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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美·中, 국운 건 ‘기술 패권’ 전쟁… 文정권 ‘安美經中 줄타기’ 시효 끝났다
 
2021-04-22 14:58:10

◆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담당대사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대외정책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G2 기술패권과 한국의 선택

바이든 韓에 ‘반도체 투자’ 요청 시점 맞춰 中은 文정부에 기술협력 제기…‘경제이익 = 안보이익’인 상황
정부, 양다리 외교 아닌 동맹 선택할 시점… 5월 한미 정상회담선 반도체-백신 문제 해결 물꼬 터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이전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는 대중 압박 수단과 방식이 다르다. 바이든 정부는 무력과 경제 제재를 앞세우는 대신 인권 압박과 과학기술 봉쇄를 주된 대결 수단으로 선택했다. 이를 통해 중국의 정치체제와 경제력을 내부로부터 약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기술 표준의 장악, 즉 ‘기술 패권’을 둘러싸고 국운을 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반도체 산업 직접 챙기기는 기술 패권을 지키기 위한 미국의 절박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미·중 디커플링(비동조화)을 더 깊숙하게 만들 수도 있다.

기술 패권의 시대에서 경제적 핵심 이익은 곧 안보적 핵심 이익이다. 경제와 안보가 한 몸이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 당국자들이 대중 편향 외교를 합리화하려 사용해온 ‘안미경중(安美經中)’ 논리는 그 시효가 끝났다. 미·중이 기술 패권을 놓고 ‘생사를 건 인정투쟁’을 벌이는 이상 이제 한국 외교는 줄타기 외교를 끝내고, 어느 한 나라를 선택해야 하는 운명을 맞았다.

◇동상이몽 한·미 관계

한·미 정상회담이 5월 말에 개최되는 것은 미·일 정상회담보다 한 달여 늦은 시기이긴 하지만 그간의 불편했던 한·미 관계를 감안하면 나름 이른 시간대에 정상회담 번호표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 회담에서 두 가지 핵심 의제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첫째는 멈춰 있는 한반도 평화의 시계를 다시 돌리기 위한 노력, 즉 고위급 미·북 핵 협상 재개와 대북제재 해제를 위한 노력이다. 둘째는 코로나19 백신 도입을 위한 대미 협조 요청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제기할 사안도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 와해 상태에 이른 한·미 동맹의 정상화. 여기엔 바이든 행정부가 그간 거론해 온 연합군사훈련 재개, 한·미·일 3각 안보협력 복원, 사드 정상 배치 등 다양한 군사 현안들이 포함될 것이다. 둘,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인도·태평양에서 벌이는 대중 포위망 동참 문제. 구체적으로는 남중국해 합동 해상훈련 참여, 쿼드 플러스 참여, 홍콩 및 신장(新疆)위구르 인권 문제에 대한 외교적 공조, 화웨이 문제를 비롯한 대중 경제 압박 동참 문제 등이다.

문 정부의 최대 관심사인 대북 문제는 북한 비핵화에 관한 한·미 간 이견이 현저하고 ‘한반도 평화’ 개념 자체에 대한 인식의 괴리가 깊어 별다른 진전을 보기는 어렵다. 한국 정부가 미국이 원하는 한·미 동맹 정상화나 대중 포위망 동참에 동의할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이런 상황은 한·미 동맹이 처한 불안스러운 현주소를 말해준다. 사실 한국으로서는 반도체-백신 문제의 연계 해결 등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그런데 미국이 그간 미·중 패권 경쟁에서 중국에 경도된 정책을 폈던 한국에 코로나 백신 협력을 제공하는 걸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미·중의 기술 패권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전통적 현안들 외에 새로운 이슈가 강력히 제기될 전망인데, 이는 한국 첨단 제조업의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가 될 것이다. 지난주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안보 문제 못지않게 반도체 공급망, 5세대(G) 통신, 인공지능(AI), 유전체학, 양자컴퓨팅 등 첨단 과학기술 협력 문제가 핵심 의제로 논의됐다. 이는 미국이 최근 발표한 반도체 공급망 통제 방침과 더불어 향후 대중국 과학기술 봉쇄 정책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을 말해준다. 지난 3일의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에서 반도체 공급망 문제가 국가안보 차원에서 논의된 시점에 중국 외교부장이 우리 외교부 장관을 긴급 호출해 반도체·5G·AI·빅데이터 등 첨단기술 협력을 제기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무력시위와 경제 제재를 대중국 압박 수단으로 동원했던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인권 압박과 과학기술 봉쇄를 주된 대결 수단으로 선택함으로써 중국의 정치체제와 경제력을 내부로부터 약화시키겠다는 전략을 추구하는 중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당시부터 논의돼 온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을 완성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반도체 등 첨단 제조업의 먹이사슬인 원천기술 → 제조장비 → 부품 → 완제품 단계에서 최상위 사슬에 속하는 미국이 기술과 제조장비 공급을 차단한다면, 중하위 사슬에 속한 중국은 물론 중상위 사슬에 위치한 한국의 첨단산업도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안보와 경제를 분리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야말로 ‘안미경중’ 정책에 안주해 온 문재인 정권의 미·중 줄타기 외교에 경고음이 울리게 됐음을 말해준다.

◇심판대 오른 ‘안미경중’

문재인 정부 당국자들이 대중 편향 외교를 합리화하려 종종 사용해 온 ‘안미경중’ 담론은 정경분리 정책을 통해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얼핏 듣기에 그럴싸해 보이는 이 담론이 실제로는 한국 정부의 친중 일변도 정책을 합리화하고 미화하는 명분으로 사용돼 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미 동맹과 별개로 국익을 위해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가 필요하다는 외교 당국자들 주장은 허위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한국이 미국 편에 서면 한반도 평화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문정인 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입장이 한결 진솔해 보일 정도다. 문제는 이런 국제적 변동 상황에서 문재인 정권의 양다리 외교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말이 양다리 외교일 뿐 실상은 대중 편향적인 경제·안보 정책을 펴기 일쑤다.

문 정권의 균형외교는 말뿐이다. 실상은 경제는 물론, 북핵·사드 배치·한미연합훈련·3각 안보협력·쿼드 가입 등 핵심 안보 사안들까지 중국의 눈치를 보는 ‘안중경중(安中經中)’ 정책이 전개되는 중이다. 문 대통령은 21일 아시아의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중국 주도 보아오(博鰲)포럼에서도 ‘아시아에서의 중국의 역할’을 평가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한 그 자리에서다.

◇한국의 운명적 선택은

미·중 신냉전의 본질은 군사력 대결에서 첨단기술 전쟁으로 성격이 옮아갔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겠다는 것은 구시대적 논리다. 경제 핵심 이익을 지키는 것이 곧 안보 핵심 이익 수호와 직결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에 설 수밖에 없다. 결론은 자명하다. 국가 간의 동맹은 결혼서약과 비슷해서 상호 선택을 한다는 국제법적 약속이다. 미·중이 국운을 건 전쟁을 시작한 이상 한국 외교는 줄타기에서 벗어나 내키지 않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전 외교부 차관보, 북핵 대사


■ 세줄 요약

동상이몽 한·미 관계 : 5월 한·미 정상회담의 한국 측 의제는 미·북 협상 재개와 대북제재 해제, 백신 도입 등. 미국은 한·미 동맹의 정상화와 대중 포위망 동참 등을 의제로 내걸 듯. 하지만 어느 하나도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

미·중의 기술 패권 : 바이든 정부는 무력과 경제 제재 대신 인권과 과학기술 봉쇄를 중국과의 대결 수단으로 선택. 중국의 정치체제와 경제력을 내부로부터 약화하겠다는 전략. 미·중은 ‘기술 패권’을 둘러싸고 국운을 건 전쟁 중.

심판대 오른 ‘안미경중’ : 기술 패권의 시대에 경제적 핵심 이익은 곧 안보적 핵심 이익. 대중 편향 외교를 합리화하기 위한 문 정권의 ‘안미경중’ 논리는 시효가 끝남. 한국이 줄타기를 끝내고 동맹 미국을 선택해야 할 시점.


■ 용어 설명

‘인정투쟁’이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나온 철학적 개념으로 ‘승인투쟁’으로도 불림. 타자가 나를 자립적인 가치로 인정해 주기를 바라면서 ‘생사를 건’ 투쟁을 벌이는 것으로 묘사.

‘안미경중’이란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지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 하지만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고 경제·안보가 일체화하면서 논리적 타당성이 사라졌다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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