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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한국] '중도' 겹치는 오세훈·안철수 단일화 쉽지 않아
 
2021-03-08 16:05:26

◆ 김형준 명지대학교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치개혁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도전' 박영선, 드디어 서울시장 후보 선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한 달 남짓 남았다. 정치권은 선거에 나설 후보 선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 1일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됐다. 당원들과 일반 여론조사를 반반씩 섞은 여론조사에서 69.6%를 얻어 경쟁자인 우상호 의원(30.4%)에게 압승을 거두었다.

박 전 장관은 후보수락 연설을 통해 “서울시 대전환, ‘21분 콤팩트 도시’에 넓고 깊은 해답이 있다”며 “평당 1000만원대 반값 아파트로 서민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앞당기는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밝혔다. 이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원팀이 돼 안정적으로 서울시민에게 행복을 돌려드리겠다”며 “앞으로의 100년은 서울이 디지털경제 수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30년 넘은 낡은 공공 임대주택 단지 재건축, 청년·소상공인에게 5000만원 무이자 대출 등 다양한 공약도 제시했다.

박 후보의 서울시장 도전은 2011년과 2018년에 이어 세 번째다. 2011년 10월 보궐선거에 출마해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지만 야권 통합 경선에서 당시 무소속으로 나온 박원순 전 서울시장(52.2%)에게 6.6%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2018년 지방선거 때에도 박 전 시장에게 다시 패배했다.

최근까지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양자간·다자간 대결 구도시 박 후보는 야권의 누구와 맞붙어도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글에서 일정 기간 특정 단어가 얼마나 많이 검색됐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선거 때 지지율과 비슷한 흐름을 보여 ‘선거 족집게’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구글 트렌드에서 박 후보는 검색량 1위를 했다. 지난 3일 구글 트렌드에서 서울시장 유력 후보군으로 분류되는 박영선·나경원·오세훈·안철수의 한 달간(2월1일~3월1일) 검색량을 분석한 결과, 박 후보의 검색량은 43을 기록한 반면, 국민의당의 안 후보는 38, 국민의힘 나 후보는 25, 국민의힘 오 후보는 23을 각각 기록했다. 해당 수치는 검색 빈도가 가장 높은 시기를 100으로 표현했을 때 상대적 검색량을 의미한다.

박 후보가 지난 한 달간 검색량 1위를 차지 한 건 다른 후보자보다 검색량 최고치를 기록한 날이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박 후보는 지난 2월 12일, 2월15일 두 차례에 걸쳐 검색량 최고치인 100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 후보는 지난 2월 21일 검색량 87를 기록한 반면, 나 후보는 지난 2월 13일 91을 나타났다. 오 후보는 지난 2월 1일 89를 기록했다.

가장 늦게 서울 시장 출마 선언을 박 후보의 선전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미시간대 선거 모델’로 설명될 수 있다. 미국 미시간대학 연구팀은 1960년대 초 유권자들의 투표 결정 요인으로 세 가지 정치심리적인 태도를 제시했다.

첫째, 정당 일체감(party identi-fication)이다. 이것은 특정한 유형의 당파적 태도로서 유권자가 어떤 정당을 대상으로 상당 기간 내면적으로 간직하는 애착심 또는 귀속의식이다. 둘째, 정책 쟁점에 대한 의견(policy issue opinion)이다. 선거 쟁점이 유권자에게 충분히 중요하게 부각되면 쟁점 투표가 이뤄진다. 셋째, 후보자 이미지(candidate image)다. 후보자의 경력, 행정관리능력, 신뢰성과 성실성, 개인적 매력과 행동양식 등이 포함된다.

민주당 지지층의 정당일체감이 상대적으로 강하고, 박 후보의 출마 선언 이후 위기감을 느낀 기존의 여당 조직력이 집결하고 있는 것 같다. 야권이 지루한 단일화 논쟁 속에서 이렇다 할 쟁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이에 박 후보가 경제 전문가 이미지와 행정 경험으로 다른 후보와 차별화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박영선 선전’엔 선점자의 실수 등을 딛고 따라잡는 ‘후발자 우위’(late-comer advantage)’ 효과도 한몫하고 있는 것 같다.

박 후보는 현역 의원 중심의 실무 팀을 구성했다. 비서실장에 이수진·천준호 의원을 임명하고 대변인에 고민정 의원, 수행실장은 강선우 의원을 선정했다. 당 차원에서도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맡고 4·7 재·보궐 선거를 총괄 지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1일 ‘제3지대 단일화’를 위한 100%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큰 이변 없이 안 후보가 무소속인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을 제치고 승리했다. 지난 4일 발표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에선 오 후보가 나 후보를 누르고 서울시장 최종 후보로 선출됐다. 오 후보는 41.6%의 득표율로 나 후보(36.3%)를 5.3%포인트 차이로 제쳤다. 조은희 후보는 16.5%, 오신환 후보는 10.4%를 각각 기록했다.

책임당원 투표와 여론조사를 합산했던 1차 예비경선 결과와 달리 최종 경선은 지난 2~3일 응답자의 지지정당을 묻지 않는 100% 일반시민 여론조사로 진행됐다. 1차 예비 경선 당시엔 ‘당심(黨心)’에서 우위를 차지했던 나 후보가 1위를 기록했다. 당 안팎에선 오 후보와 박빙의 경쟁을 펼친 나 후보가 여성가산점 10%를 받으면 승리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야권 단일화 가능성과 경선 과정에서 시정운영 경험과 합리적 중도정치를 강조한 오 후보에게 힘이 쏠린 것으로 풀이된다.

오 후보는 지난 4일 수락 연설에서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한 시장으로서 10년 간 살아오면서 그 죄책감과 자책감, 그 모든 것들을 가슴에 늘 켜켜이 쌓으면서 여러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날을 저 나름대로 준비해 왔다”고 밝혔다. 2011년 시장직을 걸고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했다가 중도 사퇴했던 것에 대한 사과로 보인다. 그러면서 “서울에서 반드시 승리해서 무능하고 잘못된 길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가고 있는 문재인 정권에 분명한 경종을 울리고 남은 기간이나마 ‘제대로 된 길을 가라, 공정한 길을 가라, 정의로운 길을 가라, 국민을 무서워하는 길을 가라’는 국민의 지상명령을 전달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오 후보는 “반드시 단일화를 이루겠다”면서 “(야권이) 분열된 상태에서의 선거는 스스로 패배를 자초하는 길”이라며 안 후보와의 단일화 성공도 약속했다.

국민의힘 부산시장 경선에서는 박형준 후보가 54.4%의 득표로 박성훈(28.6%) 후보와 이언주(21.5%) 후보를 꺾고 선출됐다. 신진 인상인 박성훈 후보가 강경 보수의 이 후보를 누른 것이 이채롭다. 박형준 후보는 수락연설에서 ‘원팀’(One-Team)을 강조했다. 그는 “경쟁을 하다 보면, 운명적으로 얼굴을 붉히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저는 이 순간부터 모든 것을 잊겠다. 같이 (경쟁)한 후보들을 믿겠다”며 “박성훈, 전성하 후보같이 젊고 역량 있는 후보들이 국민의힘에 나섰다는 것이 희망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에서 줄곧 1위를 달렸던 나 후보가 여성 가산점을 받고도 오 후보에게 지고 박형준 후보가 승리한 것이 국민의힘에 던지는 정치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강경 보수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중도 노선으로 가라는 명령이다. 오 후보가 국민의힘 최종 후보로 선출되면서 안 후보와의 야권 후보 단일화 경쟁도 본격화됐다.


안 후보는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오세훈 후보에게 진심으로 축하말씀을 드린다”면서 “조만간에 만나 건설적인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지난 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같이 밝힌 뒤 “최종 후보가 돼도 과정에서의 문제로 본선에서 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 말했다. 이어 “후보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시장이 되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며 “한 당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야권 전체가 이기는 선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도성향이라고 평가받는 오 후보가 국민의힘의 최종 후보가 되면서, 역시 중도성향인 안 후보와의 단일화 승부는 한치 앞도 알 수 없게 됐다. 단일화 룰을 정하는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측의 협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향후 야권 후보 단일화의 핵심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어떤 방식으로 단일화를 할 것인지의 문제다. 또 다른 하나는 최종 야권 후보가 된다면 국민의힘에 입당해서 기호 2번으로 출마할 것인지 여부다. 든든한 조직력을 앞세운 국민의힘은 일회성 여론조사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후보 선출에 참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안 후보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후보단일화 방식으로 참여 의사가 있는 시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해 후보를 직접 선택하게 하는 ‘시민참여형 경선’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근식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은 당 초선 모임 ‘명불허전 보수다’ 초청강연에서 “단일화 목적, 방식을 감안해 내부적으로 ‘언택트 완전 개방형 시민참여 경선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며 “다양한 시민들이 주체로 참여할 수 있게 해 지지자를 모을 수 있다”고 했다. 참여 의사가 있는 시민으로 선거인단을 꾸려, 후보를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언택트 방식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김 실장은 “여론조사, 완전 개방형 언택트 시민 참여, 숙의 배심원 제도, TV 토론 평가단 등 많은 방식이 있다”며 “이 방안이 결코 나쁜 방식이 아니고, 안 후보로 단일화되어도 안 후보에 굉장히 도움이 되는 방향이고 야권 전체에 도움된다는 걸 말씀드린다”고 설명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10월 3일 민주당 박영선, 민주 노동당 최규엽, 시민후보 박원순 등 세 후보는 야권 단일화 후보 경선을 치렀다. 여론조사 30%, TV토론회 후 배심원단 판정 30%, 국민참여경선 40%를 반영하는 경선룰이 적용됐다. 박원순 후보는 경선에서는 박영선 후보와 접전 끝에 패하였으나 TV토론 배심원단 조사, 일반 시민여론조사를 포함해 실시된 선거인단 투표 결과. 52.2%를 차지해 45.6%를 얻은 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이겼다.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는 2.3%를 받았다. 국민의힘은 내심 이와 같은 경선 방식도 고려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안 후보는 시민 참여 경선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특정인·특정 정당의 이해타산에 따라 (단일화 방식이) 정해진다면 야권 단일후보가 뽑혀도 선거에서 질 것”이라고 했다. 안 후보는 지난 5일 K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지금은 (100% 여론조사) 방법이 최선이다. 저도 금 전 의원과 100% 여론조사를 했다. 국민의힘도 같은 방법을 쓰는 게 상식적”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입당을 고려할 것인지를 묻자 “입당하라는 말은 저더러 탈당하라는 말씀인가”라고 되물은 뒤 “제가 탈당하면 국민의당 지지자, 당원들이 누가 후보가 돼도 지지를 흔쾌히 할 수 있겠나. 시너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문항은 또 다른 뇌관이다. 국민의힘은 적합도(“야당 후보로 누가 가장 적합하느냐”)를 선호한다. 반면, 국민의당은 경쟁력(“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이길 수 있는 후보가 누구입니까’)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경선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경쟁할 후보로 누구를 지지합니까’라고 물은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국민의힘 후보가 승리하면 단일 후보는 당연히 기호 2번을 달고 출마한다. 그러나, 안 후보가 최종 후보가 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국민의당의 기호 4번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제1야당의 기호 2번을 달고 출마할 것인지 묘수를 찾는 것이 큰 변수다. 이런 와중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제3지대 후보로 단일화돼서는 시장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기호 2번(국민의힘)이 아니면 선거운동을 해줄 수 없다”는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안 후보는 “기호 2번은 서울에서 7연패를 당했다”고 반박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치러진 7차례의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서 서울 지역만 놓고 보면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잇따라 패배했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안 후보의 이런 발언은 기호 4번(국민의당)을 고수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기호 4번이 반문(반문재인) 유권자의 힘을 결집하는 방안이라고 생각을 하는 듯하다. 안 대표에게 기호 4번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공간을 의미한다. 만약 안 대표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국민의힘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을 포함한 ‘야권 재편론’이 불붙을 것이고 국민의힘 입당을 거부하고 기호 4번을 고수해 자신만의 정치 공간을 유지한 것이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확신하는 것 같다.

현 시점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 방식을 둘러싼 갈등이 표출되고 있지만 결국 오세훈·안철수 두 후보간의 최종 담판으로 해결될 개연성이 크다. 오 후보가 최근 당 경선 토론에서 ‘정치적 결단에 의한 단일화’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범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박원순 무소속 후보와 민주당의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박원순 후보 측의 안을 전격 수용하겠다면서 물꼬를 텄다. 박영선 후보는 그해 9월 28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영화 최종병기 활의 마지막 대사에서 만주족 대장이 ‘바람을 계산하느냐’고 물으니 주인공이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고 했다”며 “우리도 선거 바람을 계산하지 말고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어 “민주당이 계산하지 않고 극복하겠다는 입장에서 박원순 후보의 안을 무조건 수용할테니 협상을 잘 마무리하고, 아름다운 경선, 감동적인 경선을 해달라”고 협상 종료를 주문했다. 박영선 후보의 결단으로 야권의 후보 단일화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런 비슷한 과정이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오 후보가 통큰 양보를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추진에 “직을 걸고 저지하겠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힌 지 이틀 만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임기를 마치겠다고 수차례 밝혔던 윤 전 총장이 갑자기 사표를 던진 배경은 여권의 중수청 설립을 통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시도를 막으려면 사퇴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은 사의 입장문에서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상식·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윤 전 총장은 사의 표명 후 전국의 검찰 직원들에게 전한 입장문에서 “검찰의 수사권 폐지와 중수청 설치는 검찰개혁이 아니다. 대한민국 법치주의를 심각히 훼손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또한 “수사와 재판 실무를 제대로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졸속 입법이 나라를 얼마나 혼란에 빠뜨리는지 모를 것”이라며 “수사와 기소는 성질상 분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검찰 수사권이 완전히 박탈되고 검찰이 해체되면 70여년이나 축적돼 온 국민의 자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며 “특권층의 치외법권 영역이 발생해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피해 입는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1시간여 만에 사의를 수용했다. 윤 총장이 최근 이례적으로 언론과 잇따라 인터뷰를 갖고 여당의 중수청 입법 추진은 물론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 사의 수용의 직접적인 이유로 보인다. 윤 총장은 사의를 표명하면서 ‘정계 진출’과 관련한 명시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은 “지금까지 해왔듯이 앞으로도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 보호하는데 온 힘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장외에서 집권 세력에 대한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결국 정치 행보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은 검사가 퇴직 후 1년 동안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한 이른바 ‘윤석열 방지법’을 발의했다. 윤 전 총장은 이 법안의 효력이 발생하는 날로부터 5일 전인 지난 4일 사표를 던졌다. 따라서, 윤 전 총장의 사퇴는 다분히 대권을 염두에 둔 고도의 전략적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같은 날 신현수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민변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함께 일했던 김진국 감사원 감사위원을 후임 민정수석으로 임명했다. 신 수석은 작년 12월 31일 임명된 지 두 달 만에, 지난달 9일 사의를 표명한 지 23일 만에 교체됐다. 문 대통령이 사정 라인의 동시 교체를 진행한 것은 검찰 개혁과 관련한 갈등을 신속히 진화하고, 청와대와 검찰의 관계를 재정립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윤 전 총장의 사의 표명에 정치권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 5일 “공직자로서 상식적이지 않은 뜬금없는 처신”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이재명 경지도지사는 지난 4일 윤 전 총장 사퇴에 대해 “착잡하다”고 심경을 밝히면서 “(윤 전 총장이) 한 명의 국민으로서 정치적 자유를 충분히 누리고 표현도 충분히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치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더불어 “합리적 경쟁을 통해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치 활동을 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윤 전 총장의 사직은 대한민국 헌정사와 검찰의 역사에 문재인 정권의 부끄러운 오욕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살아있는 권력이 자신들의 불법과 부패를 은폐하기 위해 검찰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헌법이 천명한 삼권분립, 민주와 법치,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어디까지 파괴할 수 있는지 이 정권은 생생하게 보여줬다”고 규탄했다.

윤 전 총장이 사퇴하면서 대중의 뇌리에 박힐 만한 ‘민주주의 수호’, ‘국민보호’와 같이 강력한 메시지를 내세워 현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은 일종의 대여 투쟁과 정치 참여 선언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서 윤 전 총장의 사퇴 시점에 대한 비판 여론도 있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출신의 김종민 변호사는 윤 전 총장의 사퇴에 대해 “시점이 뜬금없고 무책임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윤 전 총장의 향후 정치 행보와 관련해서는 국민의힘에 입당하기보다는 당분간 ‘제3지대’에 존재할 것으로 관측하는 시각이 많다.

여하튼 4월 보궐선거를 한달 정도 앞두고 윤 전 총장이 사퇴하면서 서울, 부산 시장 선거에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치권에선 정권견제론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견해와 여권 지지층 결집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번 4월 보궐선거에선 중도층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유리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개혁 성향이 강한 중도층은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는 윤 전 총장의 메시지에 주목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윤 전 총장 사퇴는 여권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윤 전 총장이 보궐선거 때까지 국민을 상대로 강력한 대여 강경 메시지를 던지면서 선거 이후 제3지대에서 야권 재편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안 후보가 국민의힘에 입당하지 않은 채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제3지대가 힘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윤 전 총장은 여전히 유력한 야권 대권후보다.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와 ‘빅3’를 구축하고 있다. 한때는 대권후보 지지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최근엔 지지율이 하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엠브레인·케이스탯·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사가 지난 1~3일 공동으로 설문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이 지사가 27%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는 12%, 윤 전 총장은 9%였다. 지난해 8월 3주부터 시작된 이 지사의 우위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보수 진영 대선후보 적합도에서 윤 전 총장은 13%로 오차범위 내 선두인 것으로 나타났다. 안 후보가 11%,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10%, 유승민 전 의원이 6%, 오세훈 후보가 4%,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4% 등의 순이었다.

1년 앞으로 다가 올 차기 대권 구도에 윤 전 총장의 사퇴와 정치 참여 선언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특히 이재명 독주체제와 야권 재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 1987년부터 2017년까지 집권당내에서 전개되었던 대권구도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발견된다. 현직 대통령과 적대 관계를 구축했던 비주류 출신이 여권 대선 후보로 선출될 경우, 정권을 빼앗겼다. 1997년 신한국당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대립했던 이회창 후보와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정동영 후보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예외는 있다. 1992년 대선에서 현직인 노태우 대통령과 적대 관계에 있던 김영삼 후보는 집권당인 민자당 대선 후보가 돼 정권 창출에 성공했다. 2002년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 경선은 현 시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정치적 뿌리가 다른 이인제 후보가 야당의 이회창 후보와 맞서는 가장 강력한 여권 대선 후보였다. 2002년 1월 김 대통령과 우호 관계였던 중립적인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불과 4%에 불과했다. 하지만 3월부터 시작된 한국 정당 사상 최초의 국민참여경선에서 노 후보가 이 후보를 제치고 승리했다. 과연 이재명 지사가 ‘김영삼’이 될지, 아니면 ‘이인제’가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4월 재보궐 선거 결과가 여야 모두 대권 구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변곡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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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3 [파이낸셜투데이] ‘행동하는 민생’이 정답이다 23-10-04
2352 [한국경제] '중대재해처벌법' 폐지하자 23-09-27
2351 [아시아투데이] NPT 체제의 이중 잣대 23-09-27
2350 [동아일보] 정체된 연금개혁, 노동개혁과 함께 풀어야 한다 23-09-19
2349 [문화일보] 정율성·홍범도 논란과 국가 정체성 위기 23-09-15
2348 [문화일보] 유가發 인플레 대응책도 혁신 강화 23-09-12
2347 [문화일보] 다가오는 총선…가짜뉴스 엄단 필수다 2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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