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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같은 건 같게, 다른 건 다르게
 
2021-03-04 15:34:50

◆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칼럼입니다.

 

평등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며, 민주주의의 핵심 이념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낳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고 그렇게 지낼 권리가 있음을 천명했다. 우리 헌법도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한다. 우리는 유독 평등 의식이 강하다. 오죽하면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을까.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참기 어렵다고도 한다.

그런데 현실에선 평등은 골고루, 무차별, 동일, 균등, 형평, 공평, 불편(不偏), 균형, 공정, 정의 등 다양한 뜻으로 풀이된다. 그래서 혼선을 빚기도 한다. 2017년 대통령 취임사 중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구절도 울림은 컸지만, 논리가 썩 매끄럽진 않다. 평등의 복합·중의적인 개념 체계를 깊이 따지려는 건 아니다. 다만 같은 건 같게(수평적 형평성), 다른 건 다르게(수직적 형평성) 다루는 원칙만큼은 지켜졌으면 한다. 특히 요즘 그렇지 않은 정책이 남발돼 걱정이다.

첫째, 사정이 다른데도 같이 취급하는 경우다. 1차 코로나 재난지원금이 대표적이다. 피해가 막심한 자영업자 등은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꼬박꼬박 급여를 받는 공직자, 심지어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둬 성과급이 많으니 적으니 다투는 기업체 직원까지 도왔어야 했을까. 수해가 나자 이재민 말고도 온 국민에게 지원금을 준 꼴 아닌가.

2025년 외국어고·국제고와 자율형사립고를 없애려는 방침도 문제다. 다양한 학습 욕구를 충족하려면 학교 자율과 학생 선택권이 존중돼야 한다. 사교육을 줄이는 관건은 공교육 정상화이지 고교 평준화가 아니다. 수학 능력이 천차만별인 학생들을 한데 모아 가르치면 눈높이를 다 맞추기 어렵고 흥미도 끌 수 없다. 사교육이 기승을 부려 부모 경제력이 자녀 미래를 좌우하는 불평등 사회로 귀결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직무 특성, 채용 이력과 고용 주체의 차이를 너무 가볍게 보고 밀어붙였다. 방과후학교 자원봉사자를 교육 공무직으로 채용하겠다는 곳마저 나왔다. 그러다 보니 노노(勞勞) 갈등과 채용 공정성 논란이 이어졌다. 공공기관 일을 위탁받은 콜센터 등 민간 종사자 지위에 관한 기준도 모호해 곳곳에서 본사 직접 고용을 둘러싼 투쟁이 한창이다. 획일적인 최저임금도 생산성이나 생계비 차이를 반영해 산업·직종·지역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게 합리적이다. 외국 일부 공항처럼 급행료를 받는 신속 출국 트랙도 도입할 만하다. 특혜처럼 비치지만 급행료 수입으로 신속 트랙을 신설하면 바쁜 승객이 빠져나간 만큼 일반 트랙의 대기열도 짧아지니 모두 이득이다.

둘째, 성격이 같은데 달리 여기는 경우다. 지난주 국회는 천문학적 예산이 드는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할 길을 열어뒀다. 국가안보,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의 연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앞으로 어느 누가 까다로운 예타를 거치려고 할까. 당장 대구·경북 신공항부터 같은 특례를 요구하고 나섰다. 거부하기 힘든 상식적 요구다.

분양가상한제 역시 같은 사안을 달리 취급해 박탈감을 부추긴다. 아파트 분양가가 시세보다 낮은 곳은 청약 경쟁이 치열하다. 당첨되면 웃돈이 붙는다. 당첨자와 낙첨자의 부(富)가 운에 따라 갈리니 로또나 다름없다. 시세대로 분양하면 이런 불공정이 준다. 나아가 주택채권 입찰제를 부활하면 환수한 시세 차익으로 공공임대주택까지 지원할 수 있으니 더 낫지 않겠나.

당정이 내놓은 4차 재난지원금에도 어색한 점이 눈에 띈다. 실직·폐업 가정의 대학생은 지원하는데, 또래인 고졸 취업준비생과 재수생 등은 빠졌다. 생애 기대소득이 대학생보다 적은 고졸자에 대한 차별 아닌가. 농어촌 특례가 오용되기도 한다. 어떤 읍·면은 웬만한 군보다 인구가 많고 거주 여건도 도시와 비슷하지만 동으로 바뀌지 않고 있다. 이들 지역은 농촌으로 분류돼 자녀의 대입 농어촌 특별전형, 건강보험료와 환경개선부담금 감면 등의 혜택을 누린다. 멀리 내다보면 후손에게 가혹한 부담을 떠넘기는 확장재정이야말로 불평등한 정책의 본보기다. 위기를 빌미로 돌이키기 어려운 경직성 지출을 가파르게 늘려선 안 된다. 한낱 미물도 실천하는 ‘내리사랑’은 못할지언정 지금 투표권이 없다고 미래세대에게 덤터기를 씌워서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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