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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균형외교’는 한미동맹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여야
 
2020-11-30 13:33:55

◆ 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국방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상국(上國) 사신(使臣)의 방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는 미사여구(美辭麗句)

‘균형외교’의 위험 인식 필요

“안미경중(安美經中)”이 바른 접근

 
상국(上國) 사신(使臣)의 방한?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한국을 한바탕 휘젓고 돌아갔다. 그는 역사책에 나오는 상국(上國) 사신의 이야기를 실증하듯이 2박 3일 간 문재인 대통령, 박병석 국회의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윤건영 의원 등 여권 핵심 인사들을 두루 만나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나눴다. 미국 폼페이오(Mike Pompeo) 국무장관의 10월 초 방한이 취소된 공백을 자신이 당당히 메우고 있음을 과시하는 태도였다.


언론에서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 정부 인사들은 왕이 외교부장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대통령을 비롯한 대부분의 고위인사들이 시간을 내어 그를 만났고, 코로나-19 상황임에도 만찬 행사도 갖고,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참여하여 눈도장을 찍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방한에서는 왕이가 미국과 각을 세우는 발언을 자제한 것에 의미를 두는 기사도 게재되었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역사책을 통하여 들었던 조선시대 대신들의 상국 사신 영접에 관한 일화들만 떠올랐다.


실제로 왕이 외교부장의 오만이 부분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2019년 12월 방한 시에 자신이 주최하는 오찬에 40분이 지각하더니 이번 강경화 외교부장관과의 회담에서 25분 늦었다. 교통체증이 원인이 아니라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의도적인 지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회담에서도 “세계에 미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미국을 견제하는 심사를 드러냈고, 사드(THAAD) 배치와 같은 “민감한 문제를 잘 처리해주기를 기대한다”면서 압박을 늦추지 않았다. 정부 인사들이 간곡하게 부탁했건만, 북한의 핵무기 폐기에 관하여 어떻게 협조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는 미사여구(美辭麗句)


현 정부는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북한이나 북핵 문제의 해결 등 안보문제 해결에 활용하고자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러한 희망은 현실을 제대로 냉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불과하다. 중국은 한국이 휴전상태로 대치하고 있는 북한의 동맹국이고, 한국은 중국이 세계적 차원에서 경쟁하는 미국의 동맹국이라서 한중 양국의 안보분야 협력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2008년 중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맺었고, 여기에 상당한 의의를 두고 있지만, 동반자관계 자체가 특별한 의무조항없이 서로의 선의를 강조하는 수사에 불과한 관계이다. 중국은 희망하는 대부분의 국가들과 이러한 동반자관계를 맺어서 그 대상이 80개 정도에 이른다. 동반자관계를 맺고 난 이후 중국이 한국에 대하여 압박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중국은 한국과의 동반자관계 체결을 명청(明淸) 시대 조선과의 관계로의 복귀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2008년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체결한 이후 안보 차원에서 한국이 얻은 중국의 지원이나 협조는 없다. 2년 후인 2010년 3월 북한이 한국의 군함인 천안함을 폭침시켰을 때, 그 원인이 북한의 잠수정에서 발사한 어뢰라는 것이 국제합동조사단에 의하여 밝혀졌지만,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여 결의안 대신 구속력 없는 ‘의정성명’만 발표되도록 만들었다. 2010년 11월 텔레비전을 통하여 생중계됨으로써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포격이 분명하였지만, 중국은 남북한이 함께 자제할 것을 촉구하였고, 역시 거부권으로 위협하여 유엔안보리에 상정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주한미군의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반대이다.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한국 국민들을 보호하는 데 필수적인 무기였지만, 중국은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이를 배치하지 말도록 요구하였고, 한국이 그 배치를 결정하자 경제보복을 가하기도 했다. 한국의 안보를 지원하고자 하면 북핵 위협 해소에 다소는 협조해줘야 하지만, 2018년 북핵 폐기를 위한 한국과 미국의 외교적 노력이 전개되었을 때 중국이 협력한 것은 없다. 오히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과 네 차례나 만나서 미국에 대한 대응전략을 협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한중간 전략적 동반자관계는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균형외교’의 위험 인식 필요


문재인 정부는 ‘균형외교’라는 말과는 달리 중국 쪽으로 경사(傾斜)되는 외교성향을 보여 왔다. 2017년 12월 대통령 스스로 중국을 방문하여 사드 배치로 인한 갈등을 봉합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다. 코로나-19의 경우 중국으로부터 유입되는 인원의 차단이 급선무였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중국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성사시키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6.25전쟁을 미국 제국주의가 일으킨 전쟁이라고 해도 침묵하였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입장 표명은 계속 미루고 있다.


이러한 중국 지향의 ‘균형외교’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상당한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현재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협은 북핵인데, 한국이 중국쪽으로 경사될 경우 한미동맹이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이 약해지면 북한이 한국을 핵무기로 공격할 경우 미국이 대규모 핵보복을 가하겠다고 위협하여 북한의 핵공격을 억제한다는,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이행 정도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오판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


한국은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에게 압력을 가하여 핵무기를 폐기하도록 하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 폐기를 위하여 노력한 것은 거의 없다. 북한이 한국을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실제 공격할 경우 중국이 그들의 핵전력을 활용하여 보복하겠다고 약속한 적도 없다. 북한이 남한에 핵무기로 공격할 경우 중국은 이를 자제시키기보다는 북한 편에 설 수도 있다. 그런데, 중국을 가까이하고, 미국을 멀리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더군다나 중국이 한국에게 기대하는 것은 양국 간의 관계개선이 아니라 한미동맹으로부터의 결별이다. 왕이 외교부장은 사드의 한국 배치를 반대하면서, 한(漢)나라 건국기(建國期) 고사 중 ‘항우(項羽)의 부하인 항장(項莊)이 칼춤을 추는 것이 결국 유방(劉邦)을 죽이려는 행동’이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즉 중국은 미국이 한국을 이용하여 중국을 포위하려고 하고, 따라서 한국을 미국으로부터 떼어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미동맹만 약화되면 중국은 한국을 방기(放棄)해버릴 것이다.


“안미경중(安美經中)”이 바른 접근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무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균형외교’를 추진하되 그 정도를 잘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처럼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중국 경사는 아주 위험하다는 걱정이다. 균형외교의 올바른 방향은 안보는 미국에게 의존하고, 중국과는 경제적으로 적극적으로 교류 및 협력하는 소위 ‘안미경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을 중국에게도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안미경중’의 정책방향을 분명하게 정립하고, 다른 국가들에게 알리는 것은 안정된 주변국관계의 지속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미국도 안심을 할 것이고, 중국도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이러한 정책을 분명히 하기 때문에 한국보다 더욱 활발하게 무역하면서도 중국은 일본의 미일동맹 강화노력에 대하여 토를 달지 않는다.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지나친 요구가 없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마찰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지속될 경우 간접적인 안보협력까지도 가능해질 수 있다.


특히 한국은 미중대결이 격화될 경우 동맹국인 미국 편을 들 수밖에 없다는 점을 중국에게 분명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중국이 자기편이 되라고 한국에게 압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중대결의 상황에서 감상론적인 균형외교에 사로잡혀 우왕좌왕할 경우 한국은 한말(韓末)과 같이 강대국 간 흥정의 대상물이 될 수밖에 없다. 국제관계 이론에 의하면 ‘균형(balancing)’은 강대국들 간의 외교정책 방향으로서 약소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쾌하지 않지만 현실은 약소국은 어느 한 강대국에 ‘편승(bandwagoning)’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은 70년 전에 이미 한미동맹을 선택했다.


현재 상황에서 한국이 고민해야할 사항은 미국과 중국 중에서 어느 편을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다. 이미 미국을 선택한 상태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얼마나 유연하게 관리해 나가느냐의 문제이다. 당연히 그 수준은 한미동맹을 해치지 않는 범위라야 할 것이다. 현 정부 인사들은 현재의 대중국 외교가 필자가 말한 그 수준이라고 주장하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중국에 대한 경사이고,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 수준이다. 균형외교에 대한 현 정부의 냉정한 재평가와 조절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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