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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北, 美엔 ‘비례억지’ 핵전략 · 南엔 ‘전역궤멸’ 재래무기 과시
 
2020-10-14 15:53:56

◆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담당대사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대외정책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北 당 창건 75주년 기념식 읽기

신형 ICBM·SLBM으로 美에 핵 무력 완성 메시지… 여차하면 ‘너 죽고 나 죽자’ 식 對北공격 억제력 확보 의도
사거리 200·600㎞ 신형미사일 - 400㎞ 방사포로 ‘南 초토화’ 위협… 文정부는 “평화·종전선언” 되풀이

지난 10월 10일 0시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이 김정은 위원장 참석하에 거행됐다. 유엔 대북 제재와 코로나 사태, 자연재해의 삼중고로 김정은 체제가 몰락하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를 무색하게 하는 현란한 기념식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는 군사퍼레이드가 북한 눈치를 보느라 사라지거나 대폭 축소됐지만, 세계 최빈국 북한에서는 매년 강화하는 형국이다. 이번 열병식에 동원된 군의 규모는 약 2만 명으로 과거와 유사한 수준이었지만 동원된 무기와 군 장비들은 최첨단 수준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행사에 2시간 이상 참석했고 28분에 걸쳐 연설함으로써 건재를 과시했다. 연설과 열병식을 통해 드러난 김정은의 생각은 크게 두 가지다. 미국에 대해서는 본토를 위협하는 핵 무력 완성을 과시함으로써 ‘북한판 비례억지 전략’을 선보였다는 것,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는 핵은 물론 재래식 무기에서도 남 전역을 초토화할 압도적인 비대칭 전력을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대미 메시지 : 비례억지 전략 메시지

김정은은 이날 연설에서 “자위적 정당방위 수단으로서의 전쟁 억제력을 계속 강화”해 나감으로써 “국가의 자주권, 생존권을 지키고 지역 평화를 수호하는 데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향후 핵 능력과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겠다는 의지의 표출로 평가된다. 이는 북한이 삼중고의 국내 상황에도 불구하고 비핵화를 통해 국면을 타개할 의지가 없음을 의미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김정은은 이처럼 핵무장 고수 의지를 거듭 천명하면서, 미국에 대한 경고의 뜻으로 두 개의 새로운 전략 미사일을 공개했다.

그 하나는 2016년 시험 발사됐던 사거리 2000㎞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 1호를 개선한 북극성 4A 미사일, 다른 하나는 2017년 시험 발사됐던 사거리 1만3000㎞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호를 보다 크게 개량한 것이다. 이들 미사일은 외형상 사거리가 기존 미사일보다 길고 ICBM의 경우 ‘다탄두미사일’일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당 창건 75주년 기념일에 이들을 시험 발사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주시해 왔으나 시험발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3차 정상회담을 기대하는 김정은이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고려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내년 1월로 예정된 차기 미국 대통령 취임에 맞춰 발사하려는 의도인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든 미 동부까지 위협하는 핵 무력 완성을 과시함으로써, 여차하면 ‘나 죽고 너 죽는다’는 물귀신 식의 ‘북한판 비례억지 전략 ’을 선보였다는 점이 느껴진다. 즉 미국의 압도적인 핵 우위가 북한 전역을 궤멸시키는 수준이라 하더라도 북한은 워싱턴DC나 뉴욕 등 한두 도시에 궤멸적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공격 의지를 막고 억제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대남 메시지 : 가공할 비대칭 과시

북한이 새로 선보인 재래식 무기체계는 가히 충격적 수준의 업그레이드가 이뤄진 것이었다. 김정은이 말한 “그 누구도 넘보거나 견주지 못할” 군사력을 구축하려 한 흔적이 짙다. 이는 핵 무장한 북한군을 강력한 재래식 군사력으로 방어한다는 한국의 국방개혁 개념을 무색하게 하는 군사력 증강이었다. 미국이나 일본과는 무관하게 ‘순전히 한국군과 한국 영토를 공격 대상으로 하는’ 무기들이었다. 우리 정부가 북한을 자극할세라 국군의날 군사퍼레이드도 취소하고 첨단무기 도입도 쉬쉬하며 헛되이 ‘평화타령’과 ‘종전선언’에 올인하던 시기에, 북은 대남 군사력 증강에 총력을 기울여 온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최근 새로 개발된 다양한 이동식 첨단 미사일과 방사포들이다. 한국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사거리 600㎞의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KN-23), 200㎞ 이상의 북한판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 사거리 400㎞의 초대형 600㎜ 방사포와 200㎞ 이상의 300㎜ 방사포, 150㎞ 이상의 북한판 S-300 장거리 대공미사일(KN-06)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새로 제작된 거대한 궤도차량에 탑재돼 강력한 기동성과 생존력을 보유한 점을 공통적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새로 등장한 첨단 기갑 무기에는 야간 및 이동 중 포격이 가능한 3세대급 전차, 한국군의 K-9 자주포와 유사한 최신형 자주포, 자동화 무인 포탑이 장착된 대전차 장갑차, 중국산 장갑전술차량, 이동식 화력통제레이더 등이 포함됐다. 보병의 개인장비도 대폭 혁신돼 소음기와 망원조준경까지 달린 신형소총으로 무장됐고, 개인 통신장비와 전투복도 대폭 현대화됐다.

북한은 이번 열병식에서 대내적 업적 과시와 대미·대남 경고 목적으로 최대한의 첨단 재래식 군사력을 과시하려 총력을 기울인 인상이 짙다. 따라서 아직 개발이 완성되지 않은 무기도 일부 있을 것이고, 완성된 무기들도 경제 여건상 단기간에 대량생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해제되거나 중국이나 한국으로부터 경제 지원이 본격화할 경우 실전 배치가 급속히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북은 이미 완성된 핵 무력에 이어 가공할 재래식 무기 개발로 한국의 영토 전역을 궤멸시킬 수 있는 비대칭 전력을 과시할 날이 닥칠 수도 있다.

◇美 대선과 김정은의 대응

김정은은 열병식 연설을 통해 “남과 북이 굳건하게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는 유화적 대남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나 이는 남북관계 개선 의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미국 대선 후 미·북 정상회담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중재가 필요하리라는 현실 인식을 반영한 언급으로 보인다. 또 경제난 장기화에 대비해 한국발 경제 지원의 문을 일단 열어두려는 의도도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 문제와 제재 해제 문제를 톱다운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성공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현재 미국 대선은 북한의 기대와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형국이다. 선거를 20여 일 앞둔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도 열세는 10% 내외로 조 바이든 후보와의 격차가 확대 추세다.

만일 바이든 후보가 승리해 집권할 경우 북한과 톱다운 식 정상회담을 재개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민주당 행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없이 제재 해제에 동의할 가능성도 희박하고, 따라서 한국 정부의 대규모 대북 경제 지원은 현실화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아무 기약 없이 다시 수년간 유엔 제재를 감내해야 한다. 김정은이 지난 10월 5일 당 정치국 회의에서 경제 목표 달성을 위한 ‘80일 전투’ 전개를 결정한 것도 이런 어려운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어려운 여건 아래에서 북한이 총력을 기울여 강행하고 있는 대대적 군사력 현대화 작업은 북한의 집요한 핵 무장 고수 의지의 표출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가 ‘9·19 남북군사합의’의 환각에 빠져 남북 생명공동체 운운하고 종전선언과 평화·대북지원 타령에 함몰된 사이에 북은 핵 무력 완성을 찍고 이제 남한을 압도하는 재래식 무력 건설을 본격화하고 있다.

전 북핵 대사·외교부 차관보


■ 세줄 요약

美엔 ‘비례억지 전략’ 메시지 : 북은 신형 전략 미사일을 공개해 미국에 여차하면 물귀신 식의 ‘비례억지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임. 이는 미국의 압도적인 핵 우위에도 불구, 북이 한두 도시를 궤멸시킬 수 있음을 과시해 전쟁 억지력을 확보하겠다는 것.

南엔 가공할 비대칭 과시 : 북이 새로 선보인 재래식 무기는 순전히 한국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충격적. 핵 완성에 이어 재래식으로도 남쪽을 압도하겠다는 의지임. 정부가 남북협력과 종전선언에 올인하던 시기에 북은 대남 비대칭 전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 옴.

美 대선과 김정은의 대응 : 미 대선 결과 조 바이든 후보가 집권하면 북한과의 톱다운 식 정상회담 재개는 어려울 것임. 김정은의 연설과 열병식에서 보인 대대적 군사력 현대화 작업은 북의 집요한 핵 무장 고수 및 한국을 압도하는 재래식 무력 건설 본격화 메시지임.


■ 용어 설명

‘비례억지 전략’이란 핵전력 열세에도 불구, 적의 핵 공격을 받는 경우 자국의 모든 핵무기로 적국 대도시 한두 군데는 반드시 궤멸시킨다는 이른바 물귀신 전략. 이를 상대가 알게 함으로써 공격 억지를 가져옴.

‘비대칭 전력’이란 적의 취약점을 공격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력. 예컨대 핵보유국은 비보유국에 가공할 비대칭 전력을 가짐. 재래식에서도 상대국이 보유하지 않는 신형 무기를 가지면 비대칭을 이룰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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