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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이재용 불기소’ 수심위 권고 불복은 검찰개혁 자기부정
 
2020-08-20 10:21:42

◆ 한반도선진화재단 고용노동정책연구회장으로 활동 중인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칼럼입니다. 


수심위 설치 명분은 검찰 수사·기소권 견제

● 1년 8개월간 50여 차례 압수수색 110명 소환조사
● 자기부정적 태도는 ‘신뢰 상실한 권위’, 국민 설득 못해
● 수사심의위 도입 후 8번 권고 모두 수용, 검찰 개혁의지 확인
● 재발 방지 방점 찍힌 ‘회복적 사법’ 강구한 제도
● 10:3으로 李 부회장 불기소·수사중단 권고
● 검찰, 소탐대실 말고 언행일치해야


세계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침체를 겪었다. 여기다 2020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에 몰아닥쳤다. 미·중 무역분쟁, 반도체 산업 패권 다툼 격화 등 국내 기업을 둘러싼 경영 환경도 녹록지 않다. 

한국 경제는 병상 위의 환자 꼴이다. 치료는 거의 받지 못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과거의 경영 상태로 회복하기 쉽지 않다. 이에 기업은 급변한 경영 환경에 스스로 적응해야 할 때다. 정부 역시 지금을 경제 전시상황으로 진단하면서 산업구조 고도화 등의 내용을 담은 ‘한국판 뉴딜정책’을 발표했다. 

글로벌 기업이자 한국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는 중국 화웨이 등과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 밖에도 중국 IT(정보기술) 기업들은 삼성전자를 상대로 중국 국내를 비롯한 각국에서 특허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또 중국 당국은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부으며 자국 기업과 삼성전자 간 기술격차를 축소하는 데 힘쓰고 있다.

해외에선 경제 전쟁, 국내선 법정 전쟁

삼성전자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그런데 국내에서 삼성은 ‘경영권 부정승계 의혹’으로 기약 없는 송사에 휘말려 있다. 이 틈새로 세계 경쟁 기업들이 회심의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경제 전쟁터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삼성의 발목을 ‘사법 리스크’가 잡고 있는 셈이다. 

검찰은 자체적으로 결정해 오던 형사상 주요 의사결정에 외부 전문가 의견을 반영함으로써 사법절차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2018년 1월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이하 수사심의위)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앞서 2017년 12월 대검찰청 예규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이 마련됐고, 예규 목적으로 ‘검찰수사의 절차 및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조).


말하자면 수사심의위는 검찰의 수사(지휘)·기소(편의·독점)권을 국민의 시각에서 견제토록 하는 역할을 맡았다. 수사심의위는 학계, 법조계, 언론계, 시민단체, 문화·예술계 등 각 분야 전문가 250명가량의 인력풀을 두고 운영한다(검찰총장은 위원 위촉 및 위원장 지명을 한다). 여기서 소정의 절차를 거쳐 심의에 참여·의결하는 현안위원회(15명)를 소집한다. 이를 통해 수사 개시 및 수사계속 여부, 기소권 행사, 구속영장 청구 등의 권고를 내린다. 

지난 6월 26일 수사심의위는 최종 10:3의 의견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검찰(총장)에 권고했다. 그런데 검찰은 수사심의위 개최 전 전격적으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자기방어권 차원에서 수사심의위를 통해 전문가와 국민으로부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받으려는 피의자의 정당한 권리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라는 말이 나왔다. 법원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함으로써 검찰의 ‘무리수에 제동’을 걸었다. 무려 1년 8개월에 걸쳐 50차례 압수수색, 100여 명에 대한 430여 차례의 소환 조사 등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 것이다.

수사심의위와 검찰에 대한 문민통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과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에도 검찰은 2개월 가까이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물론 대검찰청 예규에는 검찰은 수사심의위 권고를 존중한다고만 돼 있다. 이 때문에 수사심의위의 결론에 강제력은 없다. 다만 윤석열 검찰총장은 8월 3일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선배들의 지도와 검찰의 결재 시스템은 명령과 복종이 아니라 설득과 소통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야당 한 초선 의원의 국회 본회의장 5분 발언이 산뜻한 청량제였듯이 윤 총장의 발언 역시 시의적절한 명언이다. 

이런 시각에서 상황을 복기하면 어떤가. 신임 검사의 선배들이 검찰개혁을 위해 만들어 운영한 제도가 수사심의위고, 거기에 속한 위원들이 백가쟁명 식으로 심의한 후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라는 결론을 냈다. 이는 검찰을 향한 고언(苦言)으로 들린다. 

실제로 검찰은 수사심의위 제도가 도입된 후 2년여 동안 8번의 권고를 최대한 존중했다. 덕분에 좋은 관행이 생겼다. 검찰의 수사·기소권을 통제하고, 그 과정에서 자칫 빚어질 수 있는 인권침해를 방지할 수 있게 됐다.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형사재판에서 형벌보다 재발 방지에 중점을 둔 이론)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예규에는 권고에 대한 강제력이 없었지만 검찰은 검찰개혁 의지를 확인하듯 수사심의위 권고를 예외없이 수용했다. 

즉 수사심의위가 검찰 외부에서 견제(문민통제)의 기능을 잘 수행하면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기소를 방지하고 투명성과 공정성,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는 참이다. 세상살이에서 힘 있는 자의 언행일치는 신뢰를 위한 척도가 된다. 자기부정적인 태도는 신뢰에 금이 가게 한다. 과연 검찰은 ‘신뢰를 상실한 권위’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까? 

요즘 우리 사회 일각에선 대기업이 망해야 국가가 산다는 인식이 퍼져나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대기업이 개혁과 적개심의 대상이다. 반(反)기업 혹은 반(反)기업인 정서가 정치 이슈로 비화한다. 대기업은 격변하는 정치 공간에서 정경유착의 장본인으로 취급받으며 속죄양(贖罪羊)이 된다. 또는 노동조합의 플래카드와 구호 속에서 분노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기업이 성장해야 국가가 성장하고, 그래야 종업원이 기업에 강한 자긍심을 갖게 된다는 게 상식이다. 대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안정적인 경영권 보호의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격화되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패권 다툼은 경영 리스크를 가중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수출의 지속적 감소 탓에 국내 제조업이 악화일로에 있다. 근로자 수 감소세는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이 와중에 삼성전자는 2분기 영업이익 8조 원이라는 ‘깜짝 실적’을 냈다. 끊임없는 혁신 덕분에 불확실성 속에서도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사법 리스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탐대실 아닌 대의명분 따라야

검찰은 ‘삼성 경영권 부정승계 의혹’이라 불리는 이 부회장 관련 사건에 대한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따라야 한다. 소탐대실하지 말고 대의명분을 찾아 검찰개혁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하루 종일 뉴스를 시청하다 보면 종식을 알 수 없는 코로나19, 그로 인한 경제위기, 8월의 물 폭탄, 국회의 숙의 없는 정치 등 온통 답답한 소식뿐이다. 얼마 전 탔던 택시에서 뉴스를 듣던 젊은 기사는 흰 마스크 너머로 무심히 짜증을 내뱉기도 했다. 그의 짜증을 덜어줄 청량제 같은 좋은 뉴스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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