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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韓, ‘정권안보’ 의식해 방역 실기… ‘인간안보’ 경시한 中 닮아가
 
2020-03-03 14:06:15

◆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담당대사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대외정책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코로나19 사태로 본 ‘최선의 안보’

시진핑 방한 등 對中관계 매달려‘입국금지’엔 귀 막아… 세계2위 감염병 재앙 초래
문명국은 인간존엄·생명존중을 향한 정치·행정적 의지 강해… 인간안보 실패하면 정권위기 불러


한 나라와 정부의 질적 수준이나 능력은 전쟁이나 재난으로 큰 위기에 처했을 때 드러난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각국이 대처하는 자세와 방식을 보면 국격, 성향, 정치문화와 국정 수행 능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선진 문명국에서는 인간 존엄과 생명 존중을 바탕으로 결정하고, 후진국과 비문명국에서는 정치인들이 정치권력의 시각에서 모든 것을 결정한다. 비문명국의 현저한 특징 중 하나는 인간안보를 희생시켜서라도 정권안보를 지키려 하지만 결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정권의 안위도 위협받게 된다는 점이다.

◇안보 개념, ‘정권’에서 ‘인간’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90년대 초 미·소 냉전체제가 붕괴할 때까지 40여 년간 지구 상 대부분의 국가 정부와 국민을 짓누른 압도적 명제는 군사적 의미의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였다. 그러나 냉전체제 종식 이후 인간의 삶에 대한 국가의 보호 범위가 대폭 확대돼 이른바 ‘인간안보(human security)’ 개념이 확산 추세다. 인간안보에는 소득 증대, 빈곤 극복, 취업 보장 등 국민의 경제적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경제안보’, 국민에게 필요한 식량의 확보와 공급을 보장하는 ‘식량 안보’, 국가의 폭정과 범죄자들로부터 개인의 안전과 기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인권 안보’, 국민을 질병과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보건 안보’, 국민을 환경파괴의 재앙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환경 안보’ 등 다양하고 폭넓은 개념들이 포함된다.

이러한 포괄적 인간안보가 국가에 의해 보호되는 정도는 그 나라의 선진화와 문명화, 그리고 민주화 수준에 정비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그러한 보호체제가 어떤 시스템에 의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보장되는가 하는 것은 그 나라의 전반적 국격과 국민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문명화한 선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인간안보가 잘 보장되는 이유는, 첫째로 국가가 그럴만한 행정적·재정적 능력과 정치적 의지를 갖고 있고, 둘째로 그에 관한 국가의 정책과 행동이 선거나 언론을 통해 부단히 국민 여론의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권에 대한 국민적 감시와 통제가 허용되지 않는 독재정권, 공산주의, 전체주의 국가와 후진국에서는 이른바 ‘정권안보(regime security)’가 인간안보에 우선하고, 정권의 이익을 위해 인간안보를 기꺼이 희생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전체주의 세계의 안보관

국가에 따라서는 인간안보의 중시 또는 인본주의 정책을 국명이나 국정지침으로 명기하는 나라도 있다. 어떤 나라는 유별나게 헌법 3조에 ‘사람 중심의 세계관’을 국가의 기본철학으로 명기하고 있는데 실제로 국정 운영에서 ‘사람 중심’은 보이지 않는다. 바로 북한 헌법이다. 단순 통계로도 확인되듯 거기엔 경제 안보도, 식량 안보도, 인권 안보도, 보건 안보도 없다. 김일성 후손의 영구적 정권안보에 대한 집착과 이를 위한 폭정만 존재한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 전체주의·공산주의 진영의 종주국으로 군림하면서 미국과 첨예한 패권경쟁을 벌이는 중국도 인간안보가 특별히 중시되는 것 같지는 않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퇴조로 고심하던 중국공산당은 2000년대 중반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 시대에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이인위본’(以人爲本 :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다)이라는 인본주의 사상을 국가통치 강령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중국이 비약적 경제발전과 국력 신장을 이룬 현재까지도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정에는 인민도 인본주의도 없고, 최고 권력자와 그를 옹위하는 공산당 지도부의 정권안보만 존재할 뿐이다. 중국공산당의 기본 이념인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당초 추구했던 경제적 인도주의도, 부의 평등도 없다.

◇인간안보 실패로 정권 위협받는 중국

그러한 중국이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보여준 대처 방식은 정권안보를 위한 인간안보 희생의 극치로 읽힌다. 열악하고 후진적인 사회주의 의료체계, 의사와 과학자가 아닌 국가권력이 주도한 미숙한 초기 대응, 국민의 생명과 안전 경시, 책임 모면을 위한 정권안보 차원의 은폐와 통계 조작, 진실 은닉을 위한 언론과 여론 통제, 전문가 견해에 대한 무시와 억압, 진실 규명 노력에 대한 정치적 탄압 등이 어우러진 코로나19 대응 실패는 중국 정치체제의 치부와 한계성을 여실히 드러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화제국의 재현’을 기치로 내걸고 국부 마오쩌둥(毛澤東) 주석 사후 최초의 장기집권을 꿈꾸던 시진핑(習近平) 체제는 정권안보에 집착하다 전염병 초기 진압의 골든 타임을 놓쳤고, 결국 그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철통 같던 시진핑 통치체제의 위기설로까지 발전되는 형국이다. 정권을 지키기 위한 인간안보 경시가 정권안보를 위협하게 된 것이다. 세계 2위 경제대국과 3위 군사대국으로 급부상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위협하던 중국이 코로나19로 경제적 성장동력을 상실하고 미국과의 패권경쟁이 조기에 종식되리라는 성급한 예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중국의 초기방역 실패를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던 국제사회는 이제 세계 2위의 코로나19 확진자 보유국으로 급부상한 한국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고 제한하는 나라가 속출하고 있고, 한국인 입국자를 공항에서 추방하거나 강제로 격리수용 하는 나라도 늘고 있다. 급기야는 코로나19 종주국인 중국의 언론까지 나서서 한국 정부의 허술한 방역조치를 걱정하고 있다. 중국에 입국한 한국인 승객들이 집단 격리되기도 하고, 국내 체류 중인 중국인 유학생들이 ‘보다 안전한’ 중국으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까지 있다고 한다. 상황이 악화하면 중국이 자국민의 한국 방문을 금지하거나 한국인 입국금지를 단행할 수도 있다.

◇중국 닮아가는 한국 정부의 안보 개념

중국 정부가 사태 발생 초기에 정권안보 차원에서 의도적 정보 차단과 거짓말, 언론통제로 문제를 통제 불능 상태로 만드는 우를 범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는 국민의 보건문제에까지 정치적·이념적 잣대를 들이대고 정권안보를 위한 시진핑 주석 방한에 ‘올인’한 결과, 졸지에 세계 2위의 코로나19 감염국으로 등극했다. 다수 전문가 집단과 의료진, 언론, 시민단체가 지속적으로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중국인 입국 금지 확대 조치를 거부해 온 정부의 아집으로 초래된 재앙이다. 이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블랙스완’이라기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우려해 온 일이었다는 점에서 ‘회색 코뿔소’ 모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집권 초기부터 중국에 굴종하면서 ‘3불 약속’을 통해 국가의 안보 주권을 양도하는 일도 망설이지 않았던 집권세력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부실한 코로나19 대처의 이면에는 인간안보보다 정권안보를 우선시하는 그릇된 권력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비정상적이고 비문명적인 정치적 선택은 양국 모두에서 추구해 온 정권안보를 위협하는 결과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한국 정부의 맹목적인 중국 중시와 굴종은 중국 체제가 내포한 모든 모순과 비정상성까지 닮아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전 외교부 북핵대사·차관보


■ 세줄 요약

인간안보라는 새로운 흐름 : 안보 개념은 전 세계적으로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인간안보로 옮아가는 추세임. 인간안보의 질과 수준은 일국의 선진화와 문명화, 민주화 수준에 비례함. 즉 인간안보는 국격과 국민 수준을 가늠할 척도임.

전체주의 국가의 안보관 : 북한은 헌법 3조에 ‘사람 중심의 세계관’을 명기했지만, 국정 운영에서 ‘사람 중심’은 보이지 않음. 중국도 마찬가지임.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중국 정부의 대응은 정권안보를 지키기 위한 인간안보 희생의 극치로 읽힘.

중국 닮아가는 한국 안보관 : 한국은 전염병 대책까지도 정치·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며 시진핑 방한에 ‘올인’해 결과적으로 재앙을 초래. 한국과 중국의 코로나19 대처 이면에는 인간안보보다 정권안보를 우선시하는 그릇된 권력의 욕망이 자리함.


■ 용어 설명

‘정권안보’란 안보 개념의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한 ‘인간안보’의 대립 개념으로 쓰임. 엄밀한 의미의 학술적 개념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국가안보’와는 달리 ‘정치권력 수호’의 의미를 더 함축함.

‘회색 코뿔소’는 일어날 개연성이 높고 그 파급력이 어마어마하지만 이를 간과함으로써 발생한 위험이나 사건. 이는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막상 발생하면 큰 혼란을 몰고 오는 ‘블랙스완’과는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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