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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대학행정 교육부에서 분리해야
 
2020-02-17 11:32:32

이주호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학 위기와 파괴적 혁신

저출산으로 25년 만에 대학 입학 지원 반 토막
과거의 틀에 묶인 대학 규제 과감히 개혁 필요
영국도 학생 줄어들자 유학생 100만 유치 논의
혁신·과학기술 부서와 대학행정 융합 검토해야


저출산의 직격탄을 맞으며 대학의 위기가 가시화하고 있다. 2000년까지도 75만명이었던 한 해 고교 졸업생이 2023년에는 40만명으로 격감한다. 교육부가 고교 졸업생, 재수생, 진학률 등으로 추계하는 입학 가능 자원도 2020년 현재 49만7000명에서 2021년 42만9000명, 2024년 37만3000명으로 줄어든다. 2000년 이후 불과 25년 만에 입학 자원이 반 토막 나면서 문 닫는 대학이 속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위기는 동시에 기회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기회가 보인다. 세계적으로는 고등교육 수요가 1억6000만명에서 2030년 4억1000만명으로 폭증하면서 매일 3만명 규모의 대학을 2개씩 지어야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우리나라도 베트남에서 온 유학생이 몇 년 사이 2만7000명으로 급증했다. 최근 영국에서는 외국 유학생을 2배 늘려서 100만 유학생 유치로 세계 1위인 미국을 따라잡자는 논의가 있다. 우리도 현재 14만명 수준인 외국 유학생 유치를 두 배 늘린다면, 인구는 우리의 절반이지만 유학생 26만명으로 세계 3위인 호주를 따라잡을 수 있다.
 
과학기술의 기하급수적 발전으로 인해 빠르게 증가하는 평생학습 수요도 대학에는 좋은 기회다. 19세기만 해도 지식이 두 배가 되는 데 100년이 걸렸지만, 지금은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12시간 만에 두 배가 되는 세상이 됐다. 이제 학습은 길어야 20대까지 하고 졸업하면 배운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평생 일하는 시간의 3분의 1 정도를 학습에 할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평생 학습자 교육을 강화하고 외국 유학생을 늘리는 것으로 국내 입학생 급감으로 인한 대학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외국 유학생 증가로 기존 학생에 대한 교육의 질이 낮아져서는 안 되고 크게 향상돼야 한다. 그러려면 대학 스스로 ‘파괴적 혁신’에 나서야 하고 정부와 사회에서 이러한 대학의 변화가 가능하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대학은 학생에게 다양한 학습 경험 줘야 

대학의 파괴적 혁신은 새로운 대상을 개척하면서 완전히 새롭게 가르치는 것이다. 대학이 기존 학생을 가르치던 내용과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확대 재생산만으로 평생 학습자와 외국 유학생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을까? 평생 학습자와 외국 유학생에게 통하는 혁신적 교육을 하는 대학이 나오고, 이들이 국내 학생에게도 선택받으면서 낡은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학들을 추월하는 서열 파괴야말로 파괴적 혁신이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내용부터 바꾸어야 한다. 인공지능(AI)이 엄청난 변화를 촉발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AI에 의해 대체되지 않고 이를 증강해 활용할 수 있는 3L과 4C를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모든 아이가 갖추어야 할 문해력(Literacy)으로 읽고, 쓰고, 계산하기를 꼽았다. 하지만 이제는 엄청난 데이터를 읽고 분석하고 활용하는 역량(Data Literacy), 컴퓨터 사고력과 공학 원리에 관한 이해(Technological Literacy), 인문학적 이해와 디자인 역량(Human Literacy)의 3L이 요구된다. 여기에 창의력(Creativity), 비판적 사고력(Critical Thinking), 협력(Collaboration), 소통(Communication) 역량을 의미하는 4C를 갖춰야 한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교수가 일방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강의 중심보다는 학생에게 다양한 학습 경험을 디자인해 주는 하이터치 방식으로 가야 한다. 대학에선 수업을 지역 사회와 기업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중심으로 구성할 수 있다.
 
나아가 주요한 사회 문제와 미래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시대에 뒤처져 있다는 지적을 받는 기존의 학과·학문 구분을 초월하여 학과를 융합하는 것도 중요하다. 애리조나주립대가 지질학과와 천문학과를 융합하여 지구·우주탐사학과를 설립했다. 생물학·인류학·사회학·지질학 전공 학자들을 모아 인간 진화·사회변화학과를 설립하기도 했다.
  
학생 개인별 맞춤학습 도입해야 

노스이스턴대는 130개 국가 3300개 기업과 연결해 2학년 학생에게 6개월간 현장실습을 하도록 지원하고 이를 취업과 연계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평생 학습자들을 위해 대학이 기업과 교육과정을 공동 디자인하거나, 학생이 자기 수요에 맞추어 모듈화된 교육과정을 듣고 쌓아 올릴 수 있게 한다. 또 대학으로 학생이 찾아오는 게 아니라 대학이 학생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기 위해 여러 나라와 지역, 도시에 캠퍼스를 설치하기도 한다.
 
우리 대학이 파괴적 혁신에 나서려면 하이터치 방식에 하이테크 방식을 결합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AI 기반의 소프트웨어가 학생 개개인의 지식수준과 학습 속도에 맞추어 개별화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맞춤학습체제(adaptive learning system)를 도입해야 한다. 애리조나주립대는 이미 6만5000명의 대학생에게 수학을 포함한 12개 기초과목에서 맞춤학습체제를 도입했다. 또 130여개의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최첨단 온라인 학습플랫폼을 구축해 17년 사이에 3만명의 학생을 10만명 규모로 늘렸다. 이 대학이 엘리트 명문대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태의 포용적 대학을 목표로 파괴적 혁신에 성공한 배경은 애리조나주가 교육 수준이 낮아서 학력이 낮은 학생을 잘 교육하기 위해 교육 방식의 과감한 혁신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엘리트 대학까지도 추월하는 계기가 됐다.
  
대학의 파괴적 혁신 토양 조성해야 

우리나라에도 입학 자원 격감을 극복하고 파괴적 혁신에 성공하는 대학이 나올 수 있을까? 우리 대학은 학생의 80%가 사립대에 다니고 있고, 교수 수준이 높아서 파괴적 혁신이 가능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대학체제의 관료화를 극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대학의 목표를 조직 생존보다 경제사회 변혁과 학생 성공에 두고, 정부가 정해준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급급하기보다 학습과 지식 창출을 연결하는 혁신에 주력해야 비로소 관료주의에서 탈피할 수 있다. 교수도 관료화를 거부하고 지식 혁신가로 거듭나야 한다. 대학 재원으로 등록금과 정부 지원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제도 혁신과 파트너십을 통해 지역 사회와 산업계로 다원화해야 한다. 지역 대학은 관심을 국가 차원에 두기보다 지역과 글로벌 차원으로 돌려야 한다.
 
정부와 사회는 파괴적 혁신이 가능한 대학 체제의 구축을 위해 일관되게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과거의 틀에 묶여 있는 대학 규제 체제를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대학 행정을 영국처럼 교육부에서 분리해 혁신과 과학기술 관련 부서와 융합하는 정부 개혁도 검토해야 한다. 국가장학금의 규모도 상당히 커진 상황에서 장학재단들이 파괴적 혁신을 시도하는 대학과 교수를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대학의 파괴적 혁신이 아래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 토양과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다 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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