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2 17:48:02
각종 부작용 논란이 큰 법안으로서 이전 국회에서도 폐기됐지만, 또다시 발의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법안 하나가 사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함에도 불구하고, 손쉽게 만들어지고 손쉽게 폐기되는 현행 국회 입법 시스템이 과잉이라고 불릴 만큼 심각할 수밖에 없다. 상법 전문가인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회 과잉 입법이 너무 심각하다”며 “국회 권력을 어떻게든 견제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희망이 없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상법 찬반 논란이 거세던 지난 8월 19일 최 교수를 문화일보에서 만나 각종 규제 법안의 문제에 대해 물었다. 이후 전화 통화와 이메일 등으로 추가 보완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게 저는 국회의원의 입법 남발이라고 보고 있다. 법안 발의를 너무 쉽게 한다. 예컨대 일본에서는 내각 입법이 대다수인데, 우리나라는 정부에서 법을 내지 않는다. 규제 영향 평가를 받아야 하고, 공청회도 열어야 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점도 있지만, 국회에서 통과를 시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법안을 만들어 국회의원을 갖다 주게 됐고, 국회의원이 본인 이름을 씌워 발의하는 현상이 자꾸 생기고 있다. 굉장히 잘못된 거다.”
―해외는 어떤가.
“일본은 대부분이 내각법(內閣法), 즉 내각이 발의한 법이다. 각법은 장관 책임하에 실무를 오랫동안 담당해 온 공무원이 법을 만들기 때문에 정확하고 빈틈이 없다.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행정관청의 관료가 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입법안 수 자체는 내각 법안보다 많으나 전문성이 떨어지고 치밀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관 소위원회에서도 정부입법안을 우선 처리한다. 그런데 우리는 국회의원 입법보좌관이 외국법, 특히 일본법을 적당히 베껴서 그냥 제출한다. 더욱 문제는 이해관계자들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다. 타다 금지법 같은 경우 국회의원이 표를 의식해 택시 단체의 이야기를 듣고, ‘이건 안 된다’면서 막아선다. 한국에서는 법이 국회의원의 장난감이 됐다. 그러니 법안이 수만 개씩 나오는데, 대부분이 졸속이고 허점투성이다. 국회 권력을 어떻게든 견제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희망이 없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법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이런 것들이 한국 법률 선진화의 큰 장애요인이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나.
“입법 과잉이 발생하는 이유는 법안 발의 절차가 쉽고 법안 발의로 얻는 정치·경제적 이득이 높기 때문이다. 과도한 규제 또는 재정 낭비를 부추기는 법안이 통과돼도 그 부담과 비용은 산업계와 납세자의 몫이다. 의원 개인의 부담 비용은 없다. 반면, 법안 발의는 정치인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효과가 있는 한편, 혜택을 보는 집단의 지지를 챙길 수 있다. 이익집단들의 경쟁자 축출과 지대 추구의 가장 합법적이고 유효한 수단이 법이기 때문이다. 입법 만능주의와 포퓰리즘이 만연하고 행정규제는 증가하고 있다. 행정청이 관장하는 행정규제를 위반했을 때 무거운 형사 처벌이 수반될수록 법의 집행 과정에서 발휘할 수 있는 각종 재량권이 늘어나고, 공무원의 권력도 강화된다. 결국 과도한 법제화 현상으로 규제 확장, 규제의 중복, 입법의 기본 원칙 훼손 등의 문제로 이어진다.”
―특히 기업 규제, 최근엔 상법에서 이사 충실의무 대상 확대를 놓고 시끄러웠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는 충실의무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소액주주들을 선동하는 일종의 해프닝이다. 이사의 의무는 본래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다. 타인을 위해 일하는 수탁자가 일을 맡긴 위탁자의 최대 이익을 위해 합리적이고 사려 깊게 행동할 의무를 말한다. 충실의무는 선관주의 의무의 한 가지다. 이사는 회사 재산을 관리할 지위에 있기 때문에 그의 지위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할 유인이 많다. 이처럼 이사가 그 지위를 이용해 회사의 이익을 빼돌려서는 안 되는 것이 충실의무다. 이것을 회사에만 충실하게 하지 말고 주주에게도 충실해야 할 거 아니냐, 이렇게 오해를 한 것이다. 회사법 교과서에 다 나오는 얘기인데, 경영학을 공부한다면서도 경영 헌법인 회사법을 읽어 본 적 없는 일부 경영학 교수들이 충실의무를 국어적으로 해석해 이사의 회사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의무’인 것처럼 인식한 거다. 상법 교수들은 그동안 특별세미나 등을 통해서 주주 충실의무는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제 자연스레 이사의 ‘선관주의의무’를 강화해, “이사는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에 대해서도 선관주의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방향의 상법개정 문제로 논의가 전환됐다.”
―지배구조 개선과 소액주주 권한 강화 때문이라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선언적·확인적 의미에서라도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주주와 이사 간에는 위임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사는 회사라는 인간(법인)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것이지 주주로부터 어떤 위임을 받은 일이 없다. 따라서 이사가 주주에게 선관주의의무를 부담한다는 입법례가 거의 없다. 학급 반장이 학급투표로 선출돼 교장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지만, 학교와 급우를 위해 일해야 하는 것처럼, 주주는 당연히 회사와 총주주를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당연하기 때문에 굳이 법률로 명시할 필요가 없다. 이를 법률로 명시하면 주주와 이사 간에 위임관계도 없어 오히려 법리적으로 이상해지고, 명문의 규정을 오해한 주주들이 이사에 대해 직접 손해배상청구소송이 크게 늘어날 우려가 있다.”
―주주보호는 어떻게 해야 맞나.
“국민연금이 구 삼성물산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의 소를 제기한 것처럼, 이미 한국 법체계는 소액주주가 지배주주 및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의 소를 제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소액주주를 보호하고 있다. 소액주주보호 입법의 경우 한국은 상당히 선진국이다. 이런 권리들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계속 입법만을 요구한다. 법률에 마련된 구제조치를 외면하고 계속 법률만 만든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사가 자기 자신의 사익을 위해는 물론이고, 이사가 지배주주 개인을 위해 불법적이거나 지배주주 또는 주요주주에게는 이익이 되면서 동시에 회사(또는 전체 주주)에 손해를 미친다면 그 사무를 집행한 이사는 이미 선관주의의무 내지 충실의무를 위반한 것이 되고 현행법에 의거 처리될 수 있다. 동시에 이는 배임·횡령의 문제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따라서 상법상 이사의 선관주의무조항을 개정할 필요도 없다.”
―상법 개정안 외에도 규제법안이 다수 추진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어느 의원은 최근 이사의 의무에 ‘주주를 공정하게 대할 의무’를 추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는데, 이는 마치 ‘국민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법규처럼 당연해서 무의미한 법안이다. 같은 당 어느 의원은 독립이사 의무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독립이사는 일본의 ‘사외이사 중 독립성이 강화된 위원’을 말하는 거다. 그런데 한국은 수십 가지의 사외이사 결격사유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독립이사가 아니면 애초 사외이사에 임명될 수 없다. 해당 의원은 현실을 모르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위해 규제 대신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런 말이 있다. ‘경제는 공무원들이 잠자는 밤에 자란다.’ 경제 분야에선 규제에 신중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회가 사유재산권을 너무 쉽게 침해하고, 재산권 행사를 아무렇지 않게 박탈해버린다. 헌법이 지켜지지 않는 굉장히 위험한 나라다. 철저한 재산권 보호로 부자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 캐나다, 미국처럼 부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이들 나라는 공무원과 권력자인 국회의 갑질이 없고, 상속세와 법인세가 없으며, 국민 행동이 자유롭고, 외세의 침략 걱정이 없는 나라다. 한국은 종부세, 상속세, 금투세 폐지를 모두 부자 감세라면서 비난하고 있다. 부자들은 다 도망가고 가난한 자들만이 모인 사회에서 국회의원들이 군림하는 영원한 사회주의 국가 지향이 그들의 소망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