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9 11:00:19
"의료 개혁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정책보다는 원격·AI 의료, 디지털 치료 등의 혁신이 논의됐어야 했다. 한국의 의료 분야 AI 기반 진단 및 치료 보험 수가 적용은 여전히 미국, 일본, EU보다 느린 상태다. 비대해지고 있는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개혁 등의 청사진 또한 제시돼야 한다."(이경전 경희대 경영학·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
"미국 연방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을 할 때 AI를 통해 흑인 등 소수자에 차별을 가하는지 검사를 한다. 예컨대 백인과 흑인 사이 피부색을 제외한 모든 조건을 동일하게 설정했을 때와, 있는 그대로 데이터를 넣었을 때 결과물이 다르다면 차별이 있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검사 없이 데이터를 그대로 AI에게 주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AI는 흑인이 대출을 받으면 부도가 많이 난다고 결과값을 낼 것이다. 그렇다면 흑인들은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은 정보가 창출될 것을 예상하고 결국 정보를 주지 않게 된다. 데이터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만 참여하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편향성이 강해지고 데이터 생태계가 굉장히 왜곡된다. 그전까지의 AI가 알고리즘 등 많은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대해 논의했다면, 이제 AI가 어떻게 편향성이 없는 양질의 빅데이터를 확보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해졌다."(이종섭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팀인 'The 새로운 생각'과 주간조선 공동 주관으로 지난 9월 4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대회의실에서 'AI와 사회변혁: 정책적 해법과 미래 전략'을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3040이 주축이 된 'The 새로운 생각'과 주간조선은 앞으로 우리 사회 현안에 대한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주제로 정기 세미나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번 세미나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한국 AI 기술의 현재를 진단하고 문제점을 돌아보며 해결책을 논의했다. 구체적으로 오늘날 좋은 AI의 기준은 무엇인지, AI 기술로 인해 발생하는 격차 문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 발전을 위한 제언을 내놨다. 1부에서는 국내 최고 권위의 AI 전문가인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의 특별강연, 2부에서는 채상미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의 발제와 이종섭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박민정 금오공대 경영학과 교수, 김정현 법무법인 해송 변호사의 지정 토론이 이어졌다. 사회는 조영기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총장이 맡았다.
"AI 데이터의 민주화 필요하다"
이경전 교수는 정부의 지난 AI 정책을 분석하고 "가장 중요한 정부 과제는 역설적이게도 민간 역량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라며 "15년 이상 된 각종 진흥원을 폐지하고, 불필요한 정부 인증 사업을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이 최초로 데이터뱅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라고 제언하며 '데이터뱅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데이터뱅크란 내 돈을 내 계좌에 넣어두듯이, 내 데이터를 은행에 맡기고 은행이 그 데이터로 나 대신 비즈니스를 해서 이자를 벌어주는 체계다. 지금은 개인에게 스스로의 데이터에 대한 권리가 없는 상태다. 자신의 데이터가 어디에 사용되는지도, 어떻게 사용돼 돈을 벌 수 있는지도 모른다. 기업, 정부에서 개인의 데이터를 가져가겠다는 법뿐만 아니라 내 데이터를 내가 관리하는 시대가 돼야 한다."
'AI격차와 해결방안'이라는 주제로 발제한 채상미 교수는 "AI가 단지 기술적 격차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격차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에 대비하려면 법 제도, 정책과 기술 등 융합적인 관점에서 연구가 돼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채 교수는 한국과 글로벌 국가 사이의 AI 격차를 언급하며 "미국 등 해외 AI 선진 시장 금융사들의 경우 개별 고객 맞춤형 서비스 개발에 AI를 적용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금융기관의 AI 도입은 파일럿 단계 및 초기 단계다. 한국이나 유럽은 미국에 비해 강력한 개인정보보호법을 적용하고 있어 기업들이 AI 도입을 주저하고, 발전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국가적으로 어떤 부분에 포커스를 둬야 그나마 뒤처지지 않고 어떤 인더스트리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지 논의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종섭 교수와 박민정 교수는 지정토론에서 AI 데이터의 민주화를 주장했다. 박 교수는 "좋은 AI는 정부, 기업 등 AI와 관련된 여러 참여 의사결정자들이 집단적으로 참여한 AI 거버넌스(의사결정체계) 구축을 통해 만들어진다. 최근 사용자들이 가짜뉴스, 딥페이크 등 부정적 사례를 경험하고 있다. AI거버넌스를 통해서 단순히 기술을 발전시키거나 사용자의 개인정보만 규제할 것이 아니라 동시에 사용자의 권리 보장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최근 AI 서비스가 발생시키는 이념갈등과 정보 편향성에 대해서도 AI거버넌스 구축으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현재 챗GPT가 사용하는 데이터의 출처는 아무도 알 수 없다"며 공짜 데이터 학습이 규제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정현 변호사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AI 격차 문제를 이야기했다. 김 변호사는 "2025년에는 175제타바이트의 정보가 흐를 것이라고 예측되는데, 175제타바이트는 태블릿 하나에 정보를 넣었을 때 지구와 달 사이를 29번 왕복할 수 있을 만큼 큰 규모"라며 "과거에는 정보가 희소하기 때문에 격차가 발생했다면 이제는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에 여과력에 따른 격차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AI를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큐레이션 능력과 문화자본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디지털 리터러시 이전의 리터러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오프라인에서의 체험, 인간관계, 독서 등을 통해 개개인의 AI 사용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세미나에 참석한 손숙미 한반도선진화재단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장은 "기존 한반도선진화재단에 세대교체가 일어나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The 새로운 생각이 꾸려져 격려를 보내고 싶다"며 "오늘 기존 원로분들도 많이 오셨다. '공동체 자유주의'라는 철학 공유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다양한 멤버들이 흥미로운 주제의 세미나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