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4 - 새 정부에 바란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새 정부에 바란다] 정책제언을 시리즈로 게재합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국민의힘’ 공약으로 내걸었던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폐지’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윤석열 당선인은 여가부에 대해 “부처의 역사적 소임을 다하지 않았느냐”라고 하면서 여가부 폐지 입장을 거듭 언급하고 있다. 여가부는 과연 폐지되어야 할 운명일까?
1.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의 배경
‘국민의힘’이 내세운 여가부 폐지 공약은, 대선과정에서 생겨난 내부갈등으로 인해 대선후보 지지도가 뚝뚝 떨어지던 무렵, 국면 전환을 위해 정치적으로 사용된 측면이 많다. 당시 윤석열 후보가 자신의 SNS에 올렸던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단문의 7글자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20대 남성(이하 '이대남') 들이 이에 환호했고, ‘국민의힘’은 결국 지지율 반등에 성공했다. 혹자는 ‘국민의힘’이 ‘여가부’ 폐지 공약을 통해 여성과 남성을 갈라치기하고 국민을 분열로 몰고 갔다고 비판했지만, 그것은 어느 면으로는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젠더 갈등은 그보다 훨씬 전 시작되었고 그 대표적인 사건이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었다. 이 사건에 대해 ‘조현병 환자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수사결과가 발표되자 온라인 여성 사이트는 분노로 들끓었다. 여성 혐오에 의한 살인사건에 정신병이라는 면죄부를 주었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여성이 단순히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는 자괴감 섞인 공포와 분노가 여성들에게 퍼지게 되었다.
그 후 2018년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에 이어 여성들의 대규모 혜화동 시위, 사법계의 성추행 사건으로 촉발된 미투사건 등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애초에 여성의 열악한 사회적 지위를 신장하고 여성의 권리향상을 위해 시작되었던 페미니즘이, 남성 혐오와 여성 우월주의로 바뀌었다. 대표적 남성 혐오 커뮤니티였던 메갈리아와 워마드 등은 이러한 혐오적 페미니즘의 진앙지가 되었다.
남성은 성범죄의 잠재적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라는 인식이 퍼졌고, 여성들은 이를 여성이 당하는 핍박의 증거로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젠더 갈등은 19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고 자처한 문재인 정부에서 더 심화된 측면이 있다.
수세에 눌리고 있는 듯이 보였던 '이대남'들이 본격적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GS25 사건이었다. 젊은 남성들은 GS25가 급진적인 남혐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의 로고와 비슷한 손가락 모양의 디자인을 광고에 사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항의했고, GS25 불매운동까지 벌였다. GS25는 결국 해당 이미지를 광고에서 삭제했다. GS25 사건은 '이대남'들이 집단적이고 적극적인 움직임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항하고 이를 응징하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이제는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다” 하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대남'은 페미니즘을 차별이 아니라 공정성 면에서 접근한다. 여성들이 더 이상 약자가 아닌데도 여성 할당제를 통해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남성에 대한 역차별로 여긴다. 또 본인들은 독박 병역에 시달리며, 여성보다 더 높은 결혼비용을 지불하고, 성폭력의 잠재적 가해자로 지목당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젠더 갈등 속에서, 평소에 페미니즘을 꾸준히 비판해왔던 30대 남성이 ‘국민의힘’ 당 대표가 되었고, 정치권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젠더 갈등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정치적으로 젠더 갈등을 활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안티 페미니즘은 '이대남'을 향한 득표 전략의 핵심정책이 되었고, 그 결과가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약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한편 ‘여가부’는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면서, 여성 이슈에 잘 대처하지 못하고 오히려 남녀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철저한 진영논리에 의해 선택적 분노를 했다. 피해 여성을 보호하기는커녕 정권의 눈치를 살폈고, 오히려 피해 여성을 2차 가해했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여가부’는 이미 권력이 되어버린 여성 운동가들과 한편이었으며 진영의 이익단체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여가부’의 여성 정책 관련 일은 다른 부처에서 이미 하고 있어, 여성 정책 전담부서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취업이나 경력단절문제는 노동부가, 아동의 돌봄이나 보육문제는 보건복지부가, 성폭력 등의 성범죄는 법무부, 검찰, 경찰 등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2년 ‘여가부’는 예산이 1조 4,650억으로, 정부 예산의 0.2%밖에 되지 않는 미니부처이다. 그중에서도 여성 정책 관련 예산은 7.2% 정도에 불과해서 ‘여가부’가 따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2.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가족부’로 거듭나야
그동안 ‘여가부’의 실책과 옳지 않았던 행동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적 득표전략의 하나로 생겨난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약을 지키기만 하면 이미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젠더 갈등이 해결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여가부’의 폐지는 일부 남성들에게는 환영받을 수 있겠지만, 젊은 여성들과 여성계의 반발을 불러와 젠더 갈등은 오히려 더 깊어질 것이다.
‘여가부’가 이제는 제도적으로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유리천장과 남녀 임금 격차 등 성별 격차가 큰 나라이다. 2021년 WEF(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한국의 성별 격차지수는 156개국 중 102순위로 하위에 머물고 있다.
여성은 출산과 육아를 거치는 동안, 사회와 가정에 남아있는 가부장적 사고와 미흡한 제도로 인해, 직장을 떠나 경력단절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경력단절 후에 다시 돌아와도 제대로 된 직장을 얻기가 어려워 자연히 임시직이나 비정규직 등으로 가게 된다. 어느 40대 후반의 유명 여성 앵커는 “자신이 아직도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다른 한 여성(보통 어머니)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출산이나 양육과 관련된 휴직제도가 있어도 온전히 사용되지를 못하고 있고, 완전한 양성평등을 이룬 가족도 아직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양육문제 외에도 물리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많은 여성이 성폭력과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등에 시달리고 있고, 미혼모, 이주 여성 등 취약계층이 여전히 존재한다.
아직도 여성 정책은 갈 길이 멀다. 그렇지만 이제는 여성을 약자 혹은 피해자로 간주하고 배려하는 법과 제도보다는 남성의 억울해하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제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까지도 배려하는 양성평등으로 가야 한다. 여가부의 근간이 되었던 ‘여성발전기본법’도 전면 개정되어 2015년부터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시행되고 있다. ‘양성평등기본법’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동등한 권리, 책임, 참여 기회 등을 보장하고 있다.
현재도 ‘여가부’의 영문명은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로 직역하면 ‘양성평등가족부’이다. 그런데도 한글 명칭은 ‘여성가족부’로 서로 일치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회의 여성가족위원회에서도 ‘여가부’의 영문명과 한글명의 불일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 ‘여성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특별위원회’가 처음으로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졌고, 추후 ‘여성부’로 출범하면서 자연스럽게 여성이란 단어가 이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문명에 여성이라는 ‘Women’이 들어가지 않고 ‘Gender Equality’가 들어간 것은 1995년 유엔 ‘세계여성회의’와 2000년 OECD의 ‘여성정책장관회의’에서 결정된 행동강령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즉 유엔회의에서는 “여성 담당 국가기구는 모든 정책 분야에 양성평등 관점을 통합하는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를 으뜸 과제로 삼아야 한다”라는 행동강령이 있었고, OECD 회의에서는 “성 주류화란 대상으로서의 여성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양성평등이라는 목표에 초점을 맞추는 걸 의미한다”라고 정의하였다. 21세기에 들어와 여성 정책이 여성을 약자 혹은 요 보호 대상으로 여기는 복지정책에서 벗어나 양성평등 목표에 초점을 두는 정책으로 바뀜에 따라, ‘여가부’의 영문명은 이러한 새로운 국제적 패러다임을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으로 보아 ‘여가부’는 폐지보다는 ‘양성평등가족부’로 이름을 바꾸고, 이름에 걸맞은 새로운 목표와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여가부’를 폐지하려면 ‘정부조직법개정안’이 3~4월 임시국회를 통과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에 반발한 20대 여성들의 지지를 뜻밖에 많이 받았던 ‘더불어민주당’이 ‘여가부’를 폐지하는 정부조직법개정안에 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작은 정부를 지향했던 이명박 정부에서 ‘여가부’ 폐지에 성공하지 못했듯이, 이번에도 ‘여가부’ 폐지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문제가 심각하므로, 차제에 ‘여성가족부’를 ‘양성평등인구가족부’로 이름을 바꾸어 확대 개편하는 것도 또 다른 대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