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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대통령의 성공조건: 한국의 대통령, 왜 실패하는가?] 통권210호
 
2022-03-21 12:11:45
첨부 : 220321_brief.pdf  

<기획시리즈1 - 새 정부에 바란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새 정부에 바란다] 정책제언을 시리즈로 게재합니다.


Hansun Brief 통권210호 

이홍규 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명예교수

.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

 

-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는 국가의 중대사이다. 대통령의 실패는 국가의 실패이고 국민의 실패이다. 지난 70년 한국의 역사는 대통령 잔혹사라 할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의 성공을 향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공보다 실패의 길을 걸었다. 물론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윤보선, 최규하를 제외한 9명의 대통령 중 망명, 암살, 자살, 구속이란 불행의 길을 가지 않은 대통령은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2명뿐이다. 이들도 자식들이 감옥에 가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 왜 우리의 대통령들은 이런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가? 과연 다음 대통령은 이런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필자는 그런 점에서 현재 한국 대통령이란 자리에 드리워진 위험 요소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크게 보아 하나는 대통령이 처한 정치환경이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 자신의 국정운영 능력으로 요약될 수 있다.

 

. 대통령의 정치환경

 

- 대통령은 정치적 인물이고, 따라서 그 성공과 실패는 정치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실패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 환경이 성공에 녹록치 않은 환경이란 의미다.

 

1. 취약한 정치 시스템

- 캠프와 정부에 의존하는 정당 : 한국 정당은 미국식 선거정당과 유럽식 정책정당의 성격이 혼합된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한국 정당은 아직 그 어느 역량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 여당이라 해도 선거에 있어선 캠프에 그 역할을 내주고, 정책에 있어선 정부에 의존하고 있다. 3김 시대의 가신 정치의 유산이 이후 친노, 친이, 친박, 친문과 같은 대통령 친위그룹들에 의해 장악되며 아직까지 정당들이 사당으로의 성격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정당이 취약하니 선거철이 되면 대선 후보의 입장에선 캠프를 차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캠프 선거는 선거 후 캠프 인사들이 권력 중심에 서면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한계를 노정시키게 된다.

 

- 제왕적 대통령제 문화 : 민주주의의 두 기둥은 법치의 존중과 언론의 자유다. 이 둘 중 어느 하나가 위협을 받아도 민주주의는 무너지기 쉽다. 이 두 가지가 살아있어야 살아있는 권력을 제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들이 이런 권력에의 제약을 가능한 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 권력이 커서 제왕적 대통령으로 표현되어온 한국의 정치문화에서 대통령 권력에 대한 통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전문 행정관료의 독립성은 보장되기 어렵고, 언론은 재정지원, 인사, 심의 등으로 정부의 직간접적인 영향 아래 놓이기 쉬우며, 공직 진출이나 재정지원을 기대하는 시민단체 대표들은 비판보다 침묵하고 타협하기 일쑤였다. 더구나 여당이 국회까지 지배하게 되면 대통령의 그 권력은 무소불위로 행사되기 쉽다. 권력에 대한 제어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권력은 언제나 남용, 오용되기 쉬운 법이다. 대통령의 권력이 커질수록 대통령으로서의 성공이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역설 속에 지금 한국 정치는 놓여있다.

 

포퓰리즘과 책임의 부재 : 세계 정치는 지금 포퓰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중이 포퓰리즘의 유혹에 취약한 것을 알기에 정치인들은 선심성 공약과 정책으로 그들의 표를 얻으려 한다. 그러나 모든 선심엔 돈이 들고, 그 돈은 누군가 부담해야 한다. 엄밀히 말해 포퓰리즘은 미래 세대가 가질 몫의 수탈을 의미한다. 한국 정치도 지금 이런 포퓰리즘에 물들고 있다. 더구나 한국 정치에선 선심 정책들이 문제를 초래해도 그 책임을 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정치인은 이렇게 면책되고 있지만, 국민은 그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다. 포퓰리즘이 만연하면 결국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국민이다. 현 정부가 엄청나게 늘어난 부채경제 속에서도 앞서 정해놓은 국가채무비율의 기준조차 낮추려 했던 것은 미래 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2. 집단사고와 진영 논리의 정치 심성

- 디지털 환경과 집단사고의 확산 : 민주주의는 집단지성을 요구한다. 집단지성은 다양하고 독립적인 의견들을 개방적이고 유연하게 수용하는 가운데 만들어진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정치는 집단사고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집단사고는 획일적이고, 폐쇄적, 배타적인 생각이다. 지역 편애의 집단사고는 지난 50년 한국 정치를 결정해온 주요 변수였다. 이제는 지역과 함께 좌우의 이념적 집단사고가 정치의 주요 변수로 등장하였다. 이런 끼리끼리의 집단사고를 한층 강화시키는 것이 특히 현재의 디지털 환경이다. 인지심리학자들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집단사고를 강화시킨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는 객관보다 주관이, 지식보다 의견이, 사실보다 느낌이 찬양받는 시대다. 가짜 정보가 넘쳐나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확증편향이 강해지며, 사회에서 진실에 대한 공감능력이 퇴행하고 있다. 특히 사람들을 쉽게 무리화(herding)하는 소셜 미디어 환경으로 인해 사람들의 인지적 편견이 집단으로 뭉치고 있다. SNS를 통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편식하는 메아리 방 효과가 커지며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는 사고 속에 중독되어진다. 이런 사회적 병리가 커지면 사회는 결국 하나의 오징어게임 사회가 되고, 그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채 생사를 건 투쟁을 해야 하는 기훈과 같은 존재가 된다.

 

'편 가르기의 진영 정치 : 디지털 미디어가 가지는 정보와 지식의 편식, 진실과 가치에 대한 공감의 파괴, 상대 진영에 대한 미움과 혐오가 현실 정치와 만나면서 진영 정치가 만들어진다. 진영 정치는 진영내 편견을 강화시키고 정치를 죽기살기의 막장 정치로 몰고 간다. 진영은 전투적 성격을 갖는다. 선거에서의 승리는 승리한 진영에 점령군으로서의 우월의식을 부여한다. 진영은 이념을 앞에 내세우지만, 한편 이익적 결속이란 의미도 지닌다. 공직이 선거의 전리품으로 여겨지며 수많은 공직이 진영의 인사들에게 집중적으로 배분되는 승자독식의 상황이 전개되어져 왔다. 즉 그들은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여 이념적 편을 가르고, 전리품이란 이익을 이용해 자신들의 지지를 만드는 솜씨를 보여주었다.

 

 팬덤의 정치, 선동의 지배 : 진영적 편견이 심해지면 일종의 집단적 환각이 초래된다. 자기도취적 논리가 정의인 것으로 인식되고 상대 진영은 악마인 것처럼 인식되며, 귀에 들리는 것이 가짜정보고 궤변이라도 그것을 믿게 된다. 이의를 제기하는 자엔 문자 폭탄왕따의 제재가 가해지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진영 밖에서는 죄라도 진영 안에서는 희생이고 순교가 된다. 요즘 이런 진영을 이끄는 열성 지지층을 팬덤이라 부르고, 이들에 의해 휘둘려지는 정치를 팬덤 정치라 한다. 정치의 팬덤화는 팬덤을 이끄는 소수의 선동가, 데마고그들을 탄생시켰다. 이들의 대결은 한편의 무협 드라마 같이 전개되어진다. 말 폭력과 궤변에 능한 선동가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SNS를 통해 발하면 진영의 군중은 이에 열광하고 미디어는 이를 중계하기에 바빠진다. 이 막장 드라마의 리얼리티 쇼에 빠져든 군중은 미움을 키우고 분노의 소리를 지른다. 문제는 이런 소리 속에 국가와 사회가 붕괴되어 간다는 것이다. 외부 진영과의 싸움은 늘어나나 내부의 토론은 사라지기에 그 사회는 결국 종말을 고하게 된다. 대통령이 이런 진영 정치에 발을 담그게 되면 서슬퍼런 권력도 한낱 그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한다.

 

. 대통령의 국정운영 능력

 

- 외부 환경의 영향이 아무리 커도 대통령을 실패로 이끄는 가장 주된 요인은 결국 대통령 자신이다. 필자는 대통령의 국정 리더십을 몇 가지의 요소로 구분하면서 그것에 있어 한국 정치가 처해왔던 현실을 진단하고자 한다.

 

   1. 국가 비전의 창출 능력

- 장밋빛 비전, 허황된 공약 : 대통령이 국민을 이끌려면 비전이 살아있어야 한다. 비전은 미래를 향한 꿈이다. 비전은 실현가능한 목표, 명확한 우선순위를 가진 정책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대통령의 비전은 담대하더라도 겸허해야 한다. 포퓰리즘의 선심 공약으로 분장한 장밋빛 비전은 결국 나라와 국민을 위태롭게 할 뿐이다. 선거란 강박의식 속에 만들어지는 비전과 공약이 겸허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런 허황된 공약과 비전을 고집한다면 대통령의 실패는 어쩌면 예견된다 할 것이다.


- 앞선 이념, 실패하는 정책 : 민주주의는 이념적 다양성을 먹고 산다. 다양한 것을 어떻게 한 줄로 꿰느냐 하는 것이 정치 역량이다. 대통령의 실패는 이런 역량에서의 실패이다. 이념이 앞선 정부는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목표, 부작용을 해결할 전략과 지혜의 부재로 실패하기 쉽다. 현재의 정부도 노동정책, 부동산정책 등에서 그런 문제를 보여왔다. 이념이 앞서면 현실과 멀어지고 국민과의 갈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상당수의 국민이 대통령의 그런 이념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과의 갈등이 큰 대통령이 성공할 수는 없다.

 

- 대증적 요법, 표류하는 혁신 : 대통령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국가의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는 다양한 구조적 난제에 봉착해 있다. 대외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부채 폭증, 성장잠재력 추락, 고령화, 양극화 등 실로 해결 어려운 회색 코뿔소의 난제가 즐비하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국가의 와해적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혁신은 장기적 안목을 갖고, 구조적으로 일관성 있게 접근해야 실현될 수 있는 것들이다. 난제일수록 원인은 구조적이고 갈등 형태는 집단화되는 법이다. 따라서 혁신을 하려면 심층적 분석과 전략적 지혜가 있어야 하고, 선택과 집중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대통령들은 주로 단기적이고 대증요법적인 접근만을 하여왔다. 대증요법은 결국 혁신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게 만든다. 현 대통령도 임기 초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한다 하였다. 하지만 그 상황판은 임기 초를 지나며 실종 상태가 됐고, 대신 사람을 줄여야 할 공공기관의 인력만 오히려 잔뜩 늘리는 결과로 나타났다. 대증요법적 접근을 하면 결국 아니함만 못한 것이다.

 

2. 정책 프로세스의 관리 능력

- 정부에 대한 대통령의 착각 : 비전은 정책, 목표, 행동계획으로 구체화된다. 정책 추진은 정부가 하는 것이기에 대통령엔 유능한 정부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유능함은 대통령에 특별한 리더십이 있어야 나타날 수 있다. 정부란 오랜 세월 많은 자원과 사람들의 역량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메커니즘이다. 즉 정책은 경로의존적(path-depedent)이고, 정부 기관에는 제도적 기억(institutional memory)이 있다. 관료들에는 자신 나름대로의 처리 프로세스가 있고 이미 굳어버린 행동양식과 문화가 있다. 대통령이 실패하는 이유의 하나는 이런 정부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청와대의 참모들 또한 이런 대통령의 착각을 조장한다. 자신의 책상 위에 오는 정보는 그야말로 잘 다듬어진 정보이고, 정부는 잘 움직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 꺼풀 벗겨서 하나하나 따져보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는 법이다. 그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 결국 돌아오게 된다. 해리 트루만 대통령은 책상 위에 모든 책임은 여기서 멈춘다는 글을 놓아두었다고 한다. 책임을 진정 느끼는 대통령이라면 실로 밤잠조차 자기 어려운 것이 바로 대통령이란 자리다.

 

- 대리인 문제와 경영능력의 부재 : 조직을 움직이려면 경영능력이 있어야 한다. 정부는 국가의 가장 큰 조직이고 따라서 조직의 생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에는 항상 대리인 문제가 있다. 국민의 대리인인 공직자가 자신의 개인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대리인 문제. 대통령의 임무는 공직자가 진정 국민을 위해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공직자들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 국민이 아닌 대통령과 집권 진영에 충성하고, 자신의 안일을 위해 책임을 회피하기 쉽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공직 사회엔 권력에의 아첨과 직권남용, 책임에의 회피가 범람할 수밖에 없다. 집권층이 충성을 원하면 할수록 이 행정의 정치화는 피할 수 없게 된다. 충성이 과하게 되면 행정에 문제가 발생하고,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행정이 무엇인지 모르는 낙하산 장관이 옳은 소리를 하는 부하를 죽을래하고 윽박지르는 상황 속에서는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기도 어렵고 성과를 내기도 어렵다. 관료에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 정부를 무력화하는 청와대 : 대통령의 성공에는 효과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통령제에서는 청와대와 같이 막강한 참모조직이 운영된다. 이 참모조직을 어떻게 운영할 것이냐는 대통령마다 다르다. 청와대와 정부와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민주화 시대 이후 양자 관계를 보면 청와대 비서진으로의 권력 집중이 오히려 강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장관과 비서관의 관계 : 정부는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고, 그 주체는 비서가 아닌 장관이 되어야 마땅하다. 비서가 아무리 실세라도 모든 일은 장관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장관은 뒤로 숨고 비서가 전면에 나서고 있다. 장관이 중심이 되려면 대통령부터 장관을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서가 장관을 하찮게 여기게 된다. 월성1호기 가동중단, 행정관의 육참총장 호출같은 사례를 보면 그렇다. 오늘날 대통령이 장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은 소위 청와대의 수보 회의를 보면 알 수 있다. 대통령이 국정과 관련된 자신의 뜻을 국무회의나 장관회의가 아닌 비서관 회의에서 언급하고 발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어공(정치인)늘공(관료)의 관계 : 과거의 청와대는 늘공 인력이 중심이었으나 요즈음의 청와대는 어공이 중심에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어공과 늘공의 개인적 성향과 업무 자세는 다를 수밖에 없다. 어공이 이념적, 정치적, 임시적, 정권 충성적이라면, 늘공은 현실적, 전문적, 지속적, 정부 충성적이다. 그 성장 배경과 신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국익보다 정권의 이익에 더 민감하다면 어공에 좀 더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인사권을 장악한 어공이 주인이 되면서 늘공은 하인이 되고, 그러면 국정은 정치화되고 합리적인 목소리는 뒤로 숨게 된다. 공직 사회를 친구로 가져갈 것이냐 적으로 돌릴 것이냐 하는 것은 청와대가 해야 할 중요한 선택이다. 청와대 비서관이 너무 나서면 장관은 국장이 되고 과장이 되기 쉽다. 거기다 비서관들이 자신의 리더쉽은 돌아보지 않고 정책 실패가 나타나면 관료 탓, 홍보 탓하기 바쁘고, 자신들끼리 요즘의 공직사회는 정권 4년차 같다는 불평이나 하려 한다면 과연 그 어느 정부 관료가 제대로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3. 인재의 선택 및 활용 능력

-  인사가 만사 아닌 망사 : 지도자에는 인재를 알아보는 지인지감(知人之鑑)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많지만 인재는 찾기 어려운 법이다. 스스로 하겠다는 사람은 인재가 아니고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인재이기 쉽다. 특히 진보층의 집권 기간이 짧았기에 진보 진영에는 국가경영의 경험을 가진 인재 풀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다. 진보층의 대통령일수록 자신의 경계를 넘어 인재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당태종은 자신의 정적의 1급 참모이었던 위징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참모로 삼음으로써 중국 역사에 가장 찬란한 치세를 이룰 수 있었다. 대통령이 목숨을 걸고 쓴소리하는 위징 같은 인물들을 주위에 두지 않는다면 그는 실패의 길로 가기 쉽다. 우리 대통령들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도 결국은 인사였다 하지 않을 수 없다.

 

-  진영의 전리품으로 전락한 공직 : 진영 정치와 캠프 선거는 코드 인사를 강화시켜 왔다. 친박 감별, 친문 감별의 논란까지 일었던 그 뒤안에는 이런 진영 위주의 코드 인사가 있다. 과거보다 코드 인사가 강화되고 있는 것에는 정치인들이 공직을 선거의 전리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커진데다 인사에 있어 청와대의 장악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인사를 뒷받침한 것이 기재부의 공공기관운영관리법과 청와대의 인사수석실이다.1) 형식적으로는 별도의 위원회를 통한다고 하지만 대통령이 인사수석실과 기재부를 통해 공공기관 인사를 쉽게 장악하게 되면서 과거엔 각 장관이 알아서 했던 인사까지도 청와대가 사실상 결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코드 인사가 너무 쉽게 일어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코드 인사가 성행하면 쓴소리를 하는 인재는 멀리 가고 아첨하고 호가호위하고 자리를 탐하는 사람만 들끓게 된다. 이런 인사가 초래하는 문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  인재도 소모품이 되는 용인술 : 사람은 찾기도 어렵지만, 제대로 쓰기도 어렵다. 지도자가 인재를 쓰려면 소모품으로 쓸 것인가, 보배처럼 아낄 것인가 하는 것부터 정해야 한다. 인재라도 쓰는 사람의 그릇에 따라 인재가 되기도 하고 범인이 되기도 한다. 사람을 쓰면 믿고 자리에 합당한 역할을 주어야 한다. 장관에 임명해놓고 비서관에 더 힘을 주면 그 장관이 제 역할을 하겠는가? 주위의 음해로부터도 인재를 보호해야 한다. 바른 길로 가려고 할수록 적이 많은 법이다. 세상은 소인의 세상이고 소인은 인재를 음해하려고 한다. 이런 음해를 불식시키는 것도 결국 대통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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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공기관운영법(2007년 제정)은 과거 각 부처에 분산되었던 임명 및 감독 업무를 실질적으로 기재부로 통합시키는 효과를, 인사수석실(2003년 신설)은 인사 관련해 과거 각 분야 수석들이 하던 기능을 하나로 통합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4. 대통령의 정치적 자세

- 국민의 대통령인가, 진영의 대통령인가 : 대통령으로 진정 자신에 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 이것이다. 한마디로 전자는 어렵지만 성공의 길이고, 후자는 쉽지만 실패의 길이다. 대통령은 취임하며 모두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대통령 중 이 약속을 제대로 지킨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자신의 진영을 결속시키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에 역행할 뿐 아니라, 대통령 자신의 책무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예일대 헬렌 란데모어 교수는 민주주의에는 민주적 이성이 필요하며 그 핵심이 인지적 다양성의 포용이라 한다. 즉 자신과 다른 의견을 포용하려 최대 노력하는 것이 민주주의고, 자신에 비판적인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국민의 대통령이다. 비판은 정치의 기본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확증 편향이 걸러질 수 있다. 반대하는 야당 지도자를 설득하고 언론의 비판을 경청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확증편향은 치유된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의 대통령들이 야당과 언론을 만나는 횟수는 줄어들고 있다. 이를 보면 민주화 이후 우리 대통령들의 민주적 이성은 오히려 퇴행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균형 감각의 상실, 법치와 상식의 실종 : 문제는 대통령이 진영에 기울면 국정에 있어 균형 감각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는 첨예한 이해 대립의 장소이고, 대통령은 공정한 중재자로서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어느 한 진영에 마음을 두면 그의 균형 감각은 무너지기 마련이고 그 자리를 편 가르기의 진영 논리가 차지하며 내로남불의 판단이 국정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정의가 강자의 이익에 복무하게 되면, 결국 사회가 지켜야 할 공정한 법치와 도덕적 상식이 실종되기 마련이다. 죄를 지은 자가 오히려 큰소리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법치가 작동되느냐 여부는 한마디로 살아있는 권력에 엄정한 법치의 잣대가 적용되느냐에 달려 있고, 상식이 작동하느냐 여부는 한마디로 정직이 거짓을 배척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법치와 상식이 무너지면 국민의 울분이 나라를 뒤덮을 것이고, 그 대가는 결국 대통령 자신이 지불하여야 할 것이다.

 

자신감의 증폭, 위험 신호의 간과 : 한 미국 학자는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국정운영의 경험 부족, 성과에 대한 조급함, 자신에 대한 과신이란 문제에 부딪히기 쉽다고 한다. 이중 특히 과신 문제는 대통령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우리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대통령은 최고의 권력자로 최고로 정제된 정보의 정점에 서 있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에 과신이 생긴다. 참모의 조언을 잘 듣던 사람도 조언을 듣지 않게 되고, 내가 더 잘 알아 하는 마음이 생기며, 자신이 큰 업적을 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면 만기친람식 지시가 많아지고 야당과 언론의 비판은 뭣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잡소리로 들리게 된다. 물론 대통령은 국가의 난제들 앞에서 결기와 자신감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그것은 진정 겸허한 마음 위에 있어야 한다. 그런 겸허함이 없다면 다가오는 위험을 알아차리기 어렵고, 부하들의 충언과 아첨을 구별하기 어렵다. 한국의 권력 문화에서 대통령이 겸허한 마음을 갖기란 매우 어렵다. 문제는 작은 곳에서 시작되고, 위험은 그런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다. 박근혜 대통령도 임기 초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을 진정 자신에 닥칠 위험의 신호로 읽었다면 아마 그 이후의 국정운영이 달라졌을 것이다.

 

실패를 부르는 잠재적 위협 : 지금까지 많은 대통령들이 도덕적 문제에 봉착하곤 하였다. 자신의 권력 행사 뿐 아니라 부정부패 문제 등으로 고초를 겪었다. 자신이 아니면 친인척과 측근이 그러하였다. 권력을 갖게 되면 자신이 보통 철저하지 않는 한 주위 사람들이 그대로 두지를 않는다. 대통령의 주위에는 항상 심각한 잠재적 위협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인척뿐 아니라 문고리 권력의 문제도 생길 수 있다. 그 위험을 방지하는 한 최소의 장치가 대통령 직속의 특별감찰관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임기가 끝나기까지 이를 임명치 않고 있다. 이 제도는 결국 대통령 자신을 보호하는 제도다. 그것을 마다하면 결국 자신에 손해인 것이다.


전임 정부의 노하우 부정 : 정부에는 제도적 기억이 존재하고, 그 성과를 내려면 지식과 지혜를 계속 축적, 발전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대통령만 바뀌면 앞서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한다. 이른바 단절의 논리.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과거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단죄하겠단 입장을 견지해온 현 정부는 특히 그 어느 정부보다 과거와의 단절을 바랐던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엔 항상 지켜야 할 것과 고칠 것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지킬 것을 지키고 고칠 것을 고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이 둘을 제대로 구분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선입견과 편견을 버린 지혜롭고 열려 있는 마음이 있어야 비로써 가능한 것이다. 자신의 정적이자 후임인 숄츠를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지도자들에 인사시키는 메르켈 총리의 품격은 그래서 우리 국민에게 자괴감을 안겨준다. 신임 정권이 전임 정권의 제도적 기억과 지혜를 폄하하고 부정하려 든다면 바보가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고, 전임 정권이 후임 정권에게 자신이 가진 정보와 지혜를 물려주려 하지 않거나 감추려 한다면 그것은 국민에 죄를 짓는 것이다.

 

. 성공하는 대통령을 고대하며

 

 현대 사회는 이익을 쫓는 경쟁 사회이다. 그러나 그 경쟁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원리는 이성이다. 혹자는 진영 정치의 시대에 이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사치이고 철모르는 소리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성을 잃은 인간은 그저 광기어린 동물일 뿐이다.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을, 그리고 자식들을, 그 반()문명의 정글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인가? 인간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것은 바로 미움이다. 진영 정치의 근저에도 이런 미움이 있다. 미움이 정치를 지배하게 되면 정치는 정치가 아니고 모략과 암수가 난무하는 죽기살기의 전쟁이 된다. 전쟁은 상대를 파괴할 뿐 아니라 결국 자신도 파괴하는 법이다.

 

 링컨 대통령은 남과 북으로 나누어진 미국을 다시 하나로 만들었다. 그에게 인사는 자신의 정적을 자신의 각료로 만드는 통치술이었고, 그에게 연설은 국민의 마음에서 미움을 뽑아내고 그 자리에 화합과 관용을 심는 기회였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새 대통령에 주어진 소명 또한 좌와 우로 나누어진 대한민국을 다시 하나로 만들라는 것이다. 정치에 드린 미움을 걷어내고 다시 모두 하나가 되는 길로 인도할 사람은 대통령뿐이다. 대통령이 진영 정치의 구도를 벗어나는 선택을 하려면 취임 순간에 하여야 한다. 그 선택엔 최소 다음 3가지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지지층의 압력에서 자유로워지겠단 의지, 공직에 이념과 친소관계를 뛰어넘어 진정 능력있는 인사만 찾아 쓰겠단 의지, 야당과 언론의 비판을 진심으로 경청하겠단 의지다. 야당과 언론이란 국민이 자신에 붙여주는 레드팀이고 위징이라는 것을 대통령은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잘못은 혹독히 비판해도 상대 진영에 대한 미움은 내려놓아야 한다. 미움은 결국 자신을 진영 논리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미움이 있다면 그것은 진영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비()자유, ()법치, 비도덕의 반()문명적 언동에 대한 미움이어야 한다. 이성은 사회적 상식이고, 상식은 말과 행동의 품격으로 표현된다. 미움에 쉽게 휩쓸리는 국민은 선동과 모략에 속을 수밖에 없다. 선동가들의 궤변에 놀아나는 국민은 문명사회의 정치를 갖기 어렵다. 국민이 블랙코미디의 정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 10에서 국민의 의식이 깨어있지 않으면 사악한 자들이 쉽게 권력을 잡게 된다고 하였다. 이제는 진정 국민이 깨어날 진실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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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1. 이홍규(2002), ”청와대 보좌 시스템: 기획.조정.평가“, 대통령의 성공조건 (대통령개혁연구팀), EAI 출판, pp181-240

2. 이홍규/김병국(2006), ”경쟁국가 시대의 정부역량“, 경제를 살리는 민주주의 (장훈외), EAI 출판, pp83-143 : http://www.eai.or.kr/data/bbs/kor_book/2009060411415164.pdf

3. 이홍규(2007), “대통령의 국가경영 리더십”, 대통령직 인수의 성공조건: 67일이 5년을 결정한다 (이홍규외), EAI 출판, pp19-55

4. 이홍규(2017), 경제와 민주주의의 하모니, 소담 출판

5. 이홍규(2021), 디지털 시대, 인간에게 묻다, 율곡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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