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세계인들의 공분을 샀을 뿐만 아니라, 강대국 경쟁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가중된 국제질서에 큰 혼란을 주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 목표와 명분이 설득력이 없었기에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결정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지난 1월 우크라이나 동남부 국경과 맞닿은 크림반도 등에 10만여 병력을 집결시켰고, 미국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폴란드, 루마니아, 독일 등지에 병력을 추가 배치하였으며, 러시아의 전쟁 임박 첩보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등 정보전의 수위를 높이며 러시아의 침공 결정을 유예하려 했다. 침공 후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수십 만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 수천여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양국은 이제 협상을 시작하려 한다. 협상 타결 가능성은 불투명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선택을 통해 이미 절반의 목표, 즉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확대 저지를 달성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한편 전쟁 장기화 전망이 등장하는 가운데 이번 침공으로 민주주의 국가들의 연대, 특히 미국의 유럽 국가들간의 협력은 상대적으로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1. 확전과 제재의 한계, 전쟁의 장기화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직접적인 개입은 자제하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주변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의 영토에 병력을 추가배치하였고, 강도 높은 금융제재로서 국제결제망(SWIFT)에서 러시아를 퇴출시키는 조치에 대해 유럽 동맹국들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등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는 등의 군사적 조치를 취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 미국과 러시아 양국은 전략적 안정(strategic stability) 유지를 위해 2021년 신전략무기감축협정 연장에 합의할 만큼의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의 공식 회원국이 아닌, 즉 미국의 동맹국이 아닌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병력을 투입한다면 유럽 대륙에서의 확전이 충분히 가능하다. 더욱이 푸틴 대통령이 국제결제망 퇴출 조치를 비난하며 러시아 핵무기 운용부대의 경계태세를 높이고 특별 임무 돌입을 명령한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러시아는 향후 우크라이나와의 협상 진행과정에서도 충분히 확전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와 같이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회원국이 아닌 인근 지역의 몰도바, 조지아 등 역시 공격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우크라이나 내부에서의 시가전 과정에서 폭력성을 배가시키며 더 많은 인명피해를 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역시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과의 전면전은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일 것이기에, 향후 확전의 수위는 분명 제한적일 공산이 크다. 그러나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 확대 저지의 목표를 넘어서, 우크라이나 점령 및 친러정권으로의 교체까지 추진하려할 경우, 현재 보여지고 있듯 우크라이나 내부의 거센 저항과 이에 대한 서방의 지원으로 전쟁은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미국의 대러 금융제재는 러시아의 침공 행위를 저지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장기화를 예측케 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의 제재가 러시아가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의 임계점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확대하겠다고 최근 발표한 중국으로 인해 제재의 효과성도 높아지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제재가 효과적이기 위해 참여국 확대 뿐만 아니라, 제재가 부과되었을 때 러시아 국민들이 이를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는가의 여부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대러 제재 가운데 러시아의 핵심 산업인 에너지 분야는 제외될 것으로 알려져, 제재효과를 얼마나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요컨대 러시아의 확전과 미국 대러제재가 노정한 한계는 구조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 가능성을 예측케 한다. 문제는 이러한 러시아의 침공이 처음이 아니며, 향후에도 반복 될 수 있는 보복주의(revanchism)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2. 보복주의 야망의 잔존
향후 협상 및 확전의 수위와 범위는 러시아의 레드라인(redline)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러시아는 그동안 군사독트린 등 많은 공식 문서를 통해 자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위협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확대, 전략적 균형의 와해, 러시아 체제 전복 혹은 붕괴 시도, 혹은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권 상실 등이 공통적으로 언급되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분명 과거 구소련의 영향권 하에 있었으나, 현재 민주주의로 이행하고 있고, 서방세계와의 통합을 선호하며,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는 푸틴이 강조하는 슬라브 문명 안에 있을지라도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 체제가 아닌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하고 있으며, 이것은 푸틴에게 있어 분명 ‘영향권 상실’의 위협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보복주의적(revanchist) 지도자 푸틴 대통령은 이번 침공을 통해 키예프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예측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분열되어있던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은 단합하게 되었고, 전세계 시민들뿐만 아니라 러시아 국민들조차 불법적인 침공이라며 푸틴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항전은 과거 러시아 제국, 구소련 시기 역내 질서 유지방식이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더 이상 유효한 선택지가 아님을 보여준다.
사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보복주의 야망이 발현된 최초의 사례가 아니다. 2008년 조지아, 2016년 크림반도 병합 등의 사례가 이미 존재하지만, 당시에도 미국과 동맹국들의 강력한 조치, 즉 러시아의 행동을 되돌릴 수 있는 수준의 조치는 수반되지 않았다. 이러한 사례로부터의 학습은 러시아의 보복주의 야망을 잔존케 할 것이다. 또한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많은 국가들에게도 학습의 기회가 될 것이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는지 면밀하게 관찰하며 행동반경을 조정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3. 북한의 기회주의적 행위 가능성
유럽 전구에서의 위기 상황은 사실상 인도태평양 전구에 집중하고 싶은 미국에게 있어 달가운 상황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번 침공은 분명 민주주의 국가들의 연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중국·러시아와의 경제협력으로 인해 이들과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헤징을 유지하던 많은 국가들이 러시아의 불법 침공을 비판하며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있다. 중국은 오히려 러시아의 행위를 두둔하였고, 북한 역시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이러한 북한·중국·러시아의 연대는 사실상 영토보전과 주권존중이라는 규칙기반질서의 기본 원칙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며, 이들의 입장에 반대하는 미국과 서구 민주주의국가들과의 경계선이 명확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 북한의 경우, 미국의 관심이 분산되는 것을 우려하여 기회주의적 행위를 시도할 수 있다. 이것이 필연적으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나, 미국의 관심이 분산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우크라이나 사태는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을 더욱 요원하게 만들 가능성도 존재한다. 우크라이나 비핵화를 위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소극적 안전보장만을 명시했기에 현재 우크라이나 침공 상태를 막지 못했다는 의견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현재 푸틴 대통령이 명령한 러시아 핵무기 운용부대의 특별임무수행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가 우크라이나 직접 개입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상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은 낮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크림반도 병합 당시에도 핵무기 사용을 고려했었다는 푸틴 대통령의 언급은 러시아 내부 의사결정과정이 합리적이지만은 않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전세계에 많은 도전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국제질서의 변화와 연합의 변화, 제재로 인한 공급망 수급 문제, 북한 비핵화에 대한 함의에 이르기까지, 우크라이나 사태는 결코 한국과 무관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 역시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야기하는 문제점들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이번 사태는 국제질서가 점차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변환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기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의 이익과 외교적 공간을 적시에 마련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