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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포퓰리즘적 교육정책 지속땐 이념대립 심화·계층이동성 붕괴
 
2020-01-17 14:49:21

이주호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2020년 전망 - ③ 교육 

관료주의 젖은 정부에 교육미래 맡기긴 어려워…글로벌 표준 도입과 대학의 파괴적 혁신 절실  
낡은 패러다임 안 바꾸면 양극화만…‘벚꽃법칙’ 허물어야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 돌아올 것
 

2020년 우리 사회, 특히 교육의 미래는 밝아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회 이동성이 계속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끝난 것일까. 포퓰리즘에 빠진 정치권이나 관료주의에 젖은 정부에 해답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2020년을 사회의 난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해로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에 주목하고 어떻게 변화의 싹을 키워나가야 할까. 분명한 것은 인공지능(AI)과 결합한 학습혁명과 대학의 파괴적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복구하기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사회 양극화와 극단의 이념 대립, 그리고 세습자본주의라는 그늘에서 벗어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계층 이동 사다리의 상실 

먼저 우리 사회를 발전시켜온 동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교육, 과학기술, 개방의 힘이었다. 교육의 힘이 한국인에게 세계에서 가장 빨리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낼 수 있는 역량을 키워줬고, 과학기술의 힘이 한국인에게 정보화 시대의 선두주자로 나설 수 있게 했으며, 개방의 힘이 한국인이 선진국으로부터 배우고 세계를 무대로 활약할 수 있게 했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최고인 고학력을 자랑하는 교육 지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지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GDP 대비 무역 지표 등 최고 수준의 지표를 보인다. 이런 강력한 힘에도 불구하고 왜 사회 양극화와 이동성 저하가 시작됐을까. 문제의 핵심은 양적인 확대가 아니라 질적인 전환이다. 이제 교육, 과학기술, 개방에서 가장 창의적 해법을 찾아내고 선두주자로서 패러다임을 바꾸고 글로벌 표준을 주도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AI를 활용한 학습혁명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 사례를 보자. 지난해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중3 학생 중에서 수학의 기초학력 미달자는 5년 동안 5.7%에서 12%로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우리나라 기초학력 미달자들이 저소득층에 집중된 것과 실리콘밸리에서 수학 전공자들이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을 대비해 보면 수포자의 증대가, 가난한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아 좋은 직장에 다닐 수 있는 사회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하는지 알 수 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마이클 크리머 하버드대 교수의 연구는 이 문제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했다. 예컨대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교사의 강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초등학교 때 배웠던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사는 진도를 나가야 하므로 학생 한 명 한 명이 이해하지 못하는 각기 다른 내용을 교실에서 모두 설명해 줄 수 없다. 

그런데 최근 이 문제를 AI를 활용해 해결하는 방법이 제시됐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에서는 6만5000명의 대학생이 수학을 포함한 12개 기초과목에서 학생 개개인이 각기 다른 수준과 속도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맞춤학습’ 체제로 배우게 했다. 수학에서 ‘ALEKS(Assessment and Learning in Knowledge Spaces)’를 도입한 이후 과목 이수율이 평균 20.5% 향상됐고 수학에 기초가 없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28.5%나 증가했다. 이처럼 학습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변화가 시작됐다. 인도에서는 중학생들에게 수학의 민간 맞춤학습체제인 ‘Mind Spark’를 방과 후 시행한 결과 괄목할 만한 성적 향상을 가져왔으며 특히 저학력 학생에게 더욱 효과적이었다. 미국 볼티모어 교육구는 175개 학교, 11만1000명 학생에게 맞춤학습체제를 도입했다. 

AI를 활용한 맞춤학습체제가 교육현장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교사의 역할 또한 크게 전환돼야 한다. 프로젝트 학습 등을 통해 21세기 역량을 키워주는 동시에 학생과 교사 간의 보다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해 학생 개개인에게 가장 필요한 지도와 상담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도 낡은 입시 위주 교육에서 과감히 탈피하고 학습혁명에 도전하는 원년으로 만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학습혁명이야말로 계층이동 사다리 기능을 복원시키는 해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책환경 속에서는 그걸 기대하기 힘들다. 

◇대학과 파괴적 혁신 

한편 대학은 학생 수의 격감으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파괴적 혁신이 요구되는 이유다. 대학의 파괴적 혁신은 새로운 대상에 맞춰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애리조나주립대는 대학의 파괴적 혁신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줬다. 맞춤학습체제와 더불어 130여 개의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최첨단의 온라인 학습플랫폼을 구축하는 동시에 상상을 초월하는 학과 융합과 프로젝트학습의 전면도입을 통해 17년 사이에 3만 명의 학생을 10만 명 규모로 늘렸다. 이 대학은 엘리트 명문대학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태의 포용적 대학을 목표로 혁신에 성공했다. 역설적으로 애리조나주는 교육수준이 낮아서 학력이 낮은 학생들을 잘 교육하기 위해 교육방식의 과감한 혁신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엘리트 대학까지도 추월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 역시 파괴적 혁신에 성공한 대학들이 ‘벚꽃 법칙’을 허물고 대학 서열을 파괴해 다시 개천에서 용이 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파괴적 혁신에 성공한 대학은 외국 학생을 훨씬 적극적으로 유치할 수도 있다. 대학이 파괴적 혁신을 통해 글로벌 인재들을 대폭 유치한다면 이것이 대한민국 개방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맞춤학습체제를 도입한 대학들이 나타나고 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는 외국 학생이 절반가량 듣는 필수과목인 계량분석 과목에 ‘ALEKS’를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적용했고, 순천향대는 수학의 기초학습역량 증진을 원하는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자기 주도 맞춤형 온라인학습 및 멘토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초중등 교육에서는 사교육 시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AI의 맞춤학습체제를 장착한 교육상품들이 연이어 출시돼 에듀테크 시장 규모가 4조 원까지 확대됐다는 추계가 나온다. 문제는 아직 이러한 에듀테크 기업들이 다른 나라처럼 공교육과 손잡고 학교 교육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열쇠 

올해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더욱 거세질 정치권의 포퓰리즘은 교육의 미래에 대한 해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할 가능성이 크다. 관료주의로 거대한 화석이 된 정부에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도 없다. 위로부터의 변화만 주문하거나 정치권·정부에 실망해 변화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대학과 학교는 물론 사회단체들이 다 함께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위한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 성공한 사례를 만들고 이것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동안 많은 장학재단이 장학금 사업을 통해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큰 도움을 줬다. 이제 국가장학금 규모도 상당히 커진 상황에서 장학재단들이 학습혁명에 나서는 학교나 교사들 혹은 파괴적 혁신을 시도하는 대학과 교수를 지원하는, 즉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요컨대 2020년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를 전망하는 중요한 초점은 정부의 관료주의와 정치의 포퓰리즘에 맞서 아래로부터 얼마나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직 그 전망은 밝지 않다.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 세줄 요약 

한국사회 발전의 동력 : 교육, 과학기술, 개방 등 세 가지 힘이 대한민국 사회 발전의 동력. 하지만 낡은 교육 패러다임으로 동력이 사라지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도 점차 붕괴됨. 새로운 글로벌 교육 표준을 도입할 필요성 절실.

교육혁신이 실패하면 : 포퓰리즘에 빠진 정치권과 관료주의에 젖은 정부에만 교육의 미래를 맡기기 어려워. 아래로부터의 변화 없이는 사회 양극화, 극단의 이념 대립, 세습자본주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계층 이동성 복원을 위해 : 문제는 양적인 확대가 아니라 질적인 전환. AI를 활용한 학습혁명과 대학의 파괴적 혁신을 실현해야 누구라도 좋은 교육을 받아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며 그 결과 사회계층 이동성이 복원됨.

■ 용어 설명

‘ALEKS’는 웹 기반의 맞춤형 평가 및 학습 시스템. 학생별로 적합한 수업을 제공하는 맞춤학습의 일종. 맞춤형 질문을 이용해 학생이 뭘 아는지를 신속·정확하게 결정하고 준비가 된 주제부터 가르치며 학습된 내용을 유지하도록 재평가함. 

‘벚꽃 법칙’은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수도권과 먼 거리의 지방대학부터 문을 닫는다는 것. 오랜 반값 등록금과 혁신 부재 등 영향으로 수도권보다는 지방대학에서부터 경영난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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