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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기업 사외이사 임기 통제’ 위헌이다
 
2019-12-05 14:47:53

◆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정부가 상장사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제고한다면서 상장사 사외이사 재직연한 제한 규정을 신설한다는 내용의 상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재직연한 제한이란, 한 상장사에서 6년 이상 사외이사로 재직했거나 그 계열사에서 사외이사로 재직한 기간을 합산해 9년 이상 재직한 자는 그 직을 (자동으로) 상실한다는 내용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내년 봄 주주총회 시즌에 금융회사를 제외한 약 570개 상장사의 사외이사 700여 명이 한꺼번에 강제 물갈이될 것이다. 전체 상장사 사외이사의 5분의 1이다.

사외이사의 선임에 대해 한국처럼 깐깐하게 규정한 입법례는 찾기 어렵다. 상장사는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임명해야 하고, 감사위원회는 3인 이상의 이사로 구성하되 사외이사가 위원의 3분의 2 이상이 돼야 한다.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인 상장사는 사외이사가 3명 이상이어야 하는데, 감사위원회는 3인 이상의 이사로 구성하되 사외이사가 위원의 3분의 2 이상이어야 하고 감사위원회 대표는 반드시 사외이사여야 한다. 

문제는, 감사 및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는 모든 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3% 룰) 섀도보팅 제도마저 없앤 결과 주주총회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운데, 3% 룰 때문에 감사·감사위원 선임은 더 어렵다. 당장 내년에 사외이사이자 감사위원인 317명 선임에 비상이 걸린다. 3% 룰은 1962년에 정한 것으로, 세계에서 한국 상법에만 있는 규정이다. 

재직연한을 법정하는 취지는 장기 재직한 사외이사와 경영진의 유착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사외이사는 이사회에서 반대할 줄 모르는 거수기 노릇만 하는 현 상황이 유착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터무니없다. 법률상 사외이사의 민·형사 책임은 사내이사의 그것과 정확히 같다. 어느 사외이사가 감히 허투루 하겠는가. 한국에선 미국과는 달리 사전에 회사 임직원이 사외이사를 만나 이사회 안건을 상세히 설명한다. 아무 설명 없이 회의장에서 안건을 내놓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명을 듣고 사외이사가 반대 의견을 내면 회사는 대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수정한다. 그러니 이사회에서는 대개 만장일치 가결된다. 금속탐지기와 같다. 사전에 금속은 다 털고 금속탐지기를 지나가니 탐지기가 울릴 일이 없다. 탐지기가 망가진 것이 아닌데도 울지 않는 탐지기를 탓하며 교체하라고 야단하는 격이다. 

사외이사 임기 6년 제한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로 이미 시행 중이다. 공공의 성격이 강한 금융회사에 관한 기준을 사적 자치가 우선하는 일반 상장사에 똑같이 적용하는 것은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과도한 규제이고 과잉금지 원칙 위반이다. 기업 임원은 임기제 공무원이 아니다. 오직 능력과 실적으로만 평가받는 냉정한 승부사의 세계에서 9년 근무했다고 못 하게 하는 건 전문가를 쫓아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임기를 제한하는 국가도 있으나 업계 자율 규범으로 정할 뿐, 한국처럼 법령에 정해 강제로 쫓아내는 입법례는 없다. 영국 ‘기업 지배구조 코드’는 사외이사가 9년 이상 재직 중인 경우 그 회사의 연례보고서에 기재하라고 규정할 뿐이다. 독일 ‘기업 지배구조 코드’에선 감독이사회 이사가 12년 이상 활동한 경우 ‘독립성 결여로 판단한다’고만 돼 있다. 법규로 사기업 임원의 임기를 정한다면 이는 분명 과잉 입법, 과잉 규제다. 법무부는 차제에 3% 룰을 폐지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응하는 용기를 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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