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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北核폐기 당사자 문제와 역사의 교훈
 
2019-01-25 17:29:39

◆ 이용준 제19대 주이탈리아대한민국대사관 대사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대외정책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5년간의 임진왜란이 종식된 1597년, 중국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강화회담이 열렸다. 전쟁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이자 최대 피해자였던 조선은 그 회담에 참여하지 못했고, 명나라가 속방(屬邦)인 조선을 대리해 일본과 종전협상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일본은 한강 이남의 충청·경상·전라 지방 할양 등 7개항을 요구했고, 중국도 대체로 이의가 없었다. 그런데 일본 측이 명나라 공주를 히데요시의 후비로 보낼 것을 고집하는 바람에 협상은 결렬됐고, 일본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조선을 재침공해 1598년 정유왜란이 발발했다. 하마터면 한반도의 남쪽 절반이 일본 영토가 될 뻔했던 순간이었다. 

1990년대 초 북한 핵 문제가 발생하자 김영삼 정부는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에 한국을 대신해 북한과의 핵 협상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고, 미국이 이를 수락함에 따라 미·북 제네바 협상이 시작됐다. 그때부터 한국은 협상에서 소외됐고, 미·북 회담 후 미국 대표단을 만나 협상 결과를 받아 적어야 하는 제3자의 처지로 전락했다. 그 때문에 한국은 미국이 한국과 사전 협의 없이 북한과 합의한 제네바 합의(1994)의 이행을 위해 15억 달러의 경수로 건설비를 부담해야 했다. 

북핵(北核) 문제를 둘러싸고 한반도 안보의 총체적 미래가 걸린 미·북 협상이 지난해 출범했다. 한국 정부는 운전대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맡기고 관객석으로 물러앉은 지 오래다. 조수석에는 중국과 일본이 앉아 있다. 미국이 북한의 ICBM 개발 포기를 조건으로 핵 보유를 묵인하는 합의를 하게 되리라는 관측이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그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핵 협상 도구로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혹시라도 그 두 가지가 모두 발생한다면 우리 안보에는 그야말로 퍼펙트스톰의 빨간불이 켜질 것이다.

만약 이번 미·북 정상회담에서 이런 전망이 일부라도 현실화한다면, 이는 북한의 핵무장을 기정 사실화하고 우리 안보의 근간에 치명타를 가하는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사안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오리무중이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베트남에서 개최되리라는 말을 들으니, 20년 전 베트남 근무 때 체험한 베트남 지도자들의 치열한 국난 대응 방식이 떠오른다. 베트남은 한국과 같이 빈번한 외세 침략의 역사를 갖고 있으나, 국난에 대응하는 기본 개념이 우리와는 전혀 달랐다. 과거 베트남을 침공했던 국가들은 중국(송·명·청), 몽골, 프랑스, 일본, 미국, 중국(중화인민공화국) 등 당대의 최강국들이었으나, 베트남은 한 번도 굴복하거나 타협하거나 남에게 의존한 적이 없다. 그들은 항상 정면대결의 길을 택했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싸워 승리했다. 8년에 걸친 대미 전쟁에서도 북베트남은 소련과 중국의 군사 개입 제안을 마다하고 홀로 싸웠다. 

굳이 베트남의 교훈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현시점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너무도 명백하다. 북핵 문제와 한반도 안보의 ‘최우선 당사자’로서의 한국 역할은 피한다고 피해질 일도 아니고 숨는다고 누가 대신해 줄 일도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운명이 걸린 문제에 당사자로서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방관자로 남으면 북핵 문제 해결 과정과 연계돼 진행될 한반도의 질서 개편 과정에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바로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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