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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인내자본 : 아이폰과 원전
 
2018-10-11 15:50:38

◆ 박수영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현재 한반도선진화재단 대표로 활동 중입니다. 

 

일본을 비롯한 제조업 강국의 등장으로 어려움을 겪던 미국은 1990년대 하이테크 산업의 비약적 발전에 힘입어 이른바 `신경제` 시대를 맞게 된다. 2007년 6월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신경제`는 더욱 가속화하고, 이후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사망할 때까지 그는 세계 IT산업의 판을 바꾼 천재 기업가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아이폰의 개발과 판매에 잡스의 천재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폰을 다른 제품과 차별화한 열두 가지 핵심 기술이 실은 수십 년에 걸친 미국 정부의 과감한 과학기술 투자의 결과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핵심 기술 중 몇 가지만 살펴보자. GPS는 군사적 목표물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려던 국방부가 시작했다.

1970년대 군용으로 개발한 것이 1990년대 중반 상업화된 것이다. 음성인식 가상비서 시리(Siri) 또한 미국 정부의 투자로 만들어진 것이다. 국방부 산하 고등방위계획국이 2000년에 시작했고 2007년 상업화한 뒤 애플에 합병돼 아이폰에 적용됐다. 전화기 소형화에 기여한 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 멀티 터치스크린, 리튬이온 배터리 등도 마찬가지로 정부의 장기 투자에서 비롯된 기술들이다. 결국 아이폰이라는 세계 경제를 흔든 신기술 뒤에는 20~30년에 걸친 미국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있었던 것이다. 판을 흔드는 혁신적 기술이 민간기업의 투자만으로 이루어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민간 벤처 자본은 대개 10년을 사업 한도로 보고 있어 3~5년 안에 상업화가 가능한 분야에 치우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신적 기술의 개발에는 장기 투자를 견딜 수 있는 정부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이런 자본을 `인내자본`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인 중 일부는, 미국 정부는 인내자본 투자를 통해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는데 우리는 그동안 무얼 하고 있었느냐는 자조적인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도 인내자본을 투자하고 그 결실로 시장의 판을 흔드는 기술을 축적한 예가 있다. 바로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기술이 그것이다. 

원자력에 대한 투자는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에 불과하던 1959년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면서부터였다. 당시 나라 살림이 어려워 대규모 연구개발(R&D) 투자가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산업화에 성공한 이후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고 마침내 1978년 고리 1호기가 가동되면서 원자력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특히 1987년 이후 원전 17기가 건설됐는데 이 과정에서 원전 기술과 경험이 엄청나게 축적됐다. 

그리하여 이제는 기존 원전에 비해 수명이 20년 길고, 발전원가를 10% 줄이면서도 안전성 또한 10배 이상 향상된 APR1400이라는 제3세대 원전을 독자 개발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은 계획된 공기와 예산 내에서 건설돼 세계의 찬사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무려 77조원에 이르는 수입과 수천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에너지 자립이라는 국가 목표에 따른 인내자본 투자의 결과물인 것이다. 


최근 1년 사이 우리 사회는 원전을 둘러싼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한쪽에서는 원전에 대해 환경 파괴의 주범이고 미래 재앙을 가져오는 대상으로 보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원전이야말로 에너지 자립을 할 수 있는 친환경 자원이며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원전 기술은 아이폰의 핵심 기술보다 더 오랫동안 인내자본을 투자한 결과물이다. 그런 만큼 이념이나 선입견이 아닌 과학적인 증거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신중한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 같은 인내자본을 투입한 아이폰과 원전이 미국과 한국이라는 공간에 따라 운명이 갈리게 되면 길게는 60년, 짧게 잡아도 30년 이상을 투자한 인내자본의 엄청난 과실을 우리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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