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 군인과 역사, 그리고 헌법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는 말이 있다. 미북협상과 남북협상으로 급변하는 한반도 상황에서 군은 무엇에 복종해야 하는가. 군이 복종해야 할 것은 명령인가, 아니면 역사성인가?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성찰이 필요한 이 시기에 한선재단이 지난 6월 19일에 주최한 <군인과 역사, 그리고 헌법>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와 토론문을 요약 게재한다. (편집자 注)
이정훈 동아일보 기자
‘군인의 명령과 역사적 책임’ 참으로 묵직하고 진지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글은 진즉부터 다뤘어야 할, 그러나 여간해서는 다루지 않는 가장 원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며 떠오른 것은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였다. 이 소설에는 ‘이순신은 두 칼끝 사이에 서 있었다. 선조가 겨누는 칼과 왜적이 겨누는 칼이었다. 언젠가는 두 칼 중 하나에 목숨을 잃으리라…. 이순신은 죽을 자리를 찾고 다녔다. 그는 적의 칼날에 죽기를 원했다’란 대목이 있다. 이어 ‘선조는 이순신을 잡아들였다. 죽일 수가 없었다. 바다 건너에서 왜군이 또 다시 쳐들어 온 것이다. 이순신은 살아도 죽어도, 선조의 적이었다’란 대목도 있다.
이순신은 적어도 선조와 조정에 대해서는 불복종을 더 많이 한 군인이었다(칠천량해전 기피). 그러나 국가와 백성(그때는 국민이 아니었다)에는 충성을 다했기에 선조는 그를 무시하지 못했다. 선조는 삼도수군통제사영이 있는 통영에 사당(忠烈祠)을 지어 전사한 이순신을 추모하게 했다. 인조 때는 충무공이라는 시호가 그에게 내려졌고, 효종 때는 노량(忠烈祀), 숙종 때는 그의 고향이자 무덤이 있는 아산(顯忠祠)에도 사당을 짓게 했고, 정조 때는 그에게 영의정이 추증되었다. 이런 점에서 이순신은 불복종 문제를 지우며 국가적으로 예우도 받게 된 ‘운 좋은’ 군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